1985년 10월 뚝섬경마장에서의 일이다. 경주 도중 선두로 달리던 비슬산이라는 말이 결승선 100여m를 남겨놓고 갑자기 장애물 비월을 하듯 펜스를 뛰어넘었다.
서 기수는 즉시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고 비슬산은 그 자리에 쓰러져 일어날 줄 몰랐다. 5분 가량 꼼짝을 않더니 몸을 푸르르 떨다 사지를 축 늘어뜨렸다.
동물이 숨질 때 몸을 한번 떤 뒤 축 늘어지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비슬산은 현장에서 즉사하고 기수는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만 깊은 상처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비슬산이 잠에서 깬 듯 부스스 일어나더니 마구간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이어서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서 기수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감씨는 너무다 당황스러웠다. 결과가 기껏 생각해서 한 멘트와 정반대로 나타났으니. 더군다나 기수가 사망하는 큰 사고였기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어쩌랴. 다시 마이크를 잡고 서 기수의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정정 방송을 했다. 그리고 윗선에 불려가 호된 꾸지람은 물론 징계까지 받아야 했다. 이래서 마나운서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생긴 모양이다. <전 스포츠조선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