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먹거리의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심상치 않다. 높은 금리가 계속 유지되는데다, 국제 유가도 불안하다.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이래저래 팍팍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다른 주요 선진국과의 비교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이 조금 잦아들면서 주요국들의 물가 상황은 진정되는 상황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과일과 채소 중심으로 먹거리 물가를 한껏 끌어올린 탓이라는 분석이다.
즉 전쟁 발발 이후 2년여동안 먹거리 물가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주요국들이 이제 안정을 찾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물가 상승률 통계가 집계된 OECD 35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먹거리 물가 상승률은 튀르키예(71.12%), 아이슬란드(7.52%)에 이어 세번째로 높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먹거리 물가는 급상승했다. 러시아는 밀과 천연가스의 세계 최대 수출국, 우크라이나는 세계 3∼5위권 밀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가를 위시한 에너지 가격이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지역적인 가뭄 피해도 이를 가속화 시켰다.
이로 인해 2021년까지 5% 수준을 밑돌던 OECD 회원국의 평균 식품 물가 상승률은 2022년 11월 16.19%까지 치솟았다. 우리나라 식품 물가도 같은 기간 5∼7%를 오르내리며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 수치가 지난해 7월(9.52%) 10%를 하회한 데 이어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수준인 5%대로 떨어지는 등 빠르게 정상화하는 모습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 3.81%로 바닥을 찍은 뒤 지난해 10월 이후 다시 5∼7%대로 올라섰고 급기야 2년여만에 OECD 평균을 추월한 것이다.
물가 상승을 이끈 대표적인 품목은 사과와 배 등 단연 과일이다. 지난달 사과 물가는 88.2% 올라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0년 1월 이후 상승폭이 가장 컸다.
22일 글로벌 투자은행 노무라증권이 G7과 유로 지역, 한국과 대만의 올 1분기 소비자물가지수를 비교했는데, 우리나라의 과일과 채소 가격의 상승률이 36.9%를 기록, 2위인 대만(14.7%)의 2배 이상으로 월등히 높았던 것에도 잘 나타난다.
더 큰 문제는 이스라엘과 이란 충돌로 중동 전쟁이 다시 촉발될 수 있다는 위기가 고조되면서 한층 불안해진 국제유가와 환율 상승이 소비자 물가를 더욱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고환율로 수입 원재료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예를 들어 최근 코코아 가격 폭등으로 인해 초콜릿류 가공식품의 가격이 10% 이상 급등했다.
정부는 하반기에 물가가 하향 안정화 되면서 올 상승률이 2.6%에 수렴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유지하고 있지만, 현재의 불안한 상황으로는 회의적인 시각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들과 만나 "불안 요인이 많이 있고 여러 상황은 더 봐야 하겠지만 근원 물가는 안정적이기 때문에 하반기 물가는 하향 안정화 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중동 전쟁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유가가 오르고, 달러 환율이 상승한 것은 연초에 예기치 못했던 변수이다. 자칫 위기가 장기화 된다면, 2년만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