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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근면·성실히 인생을 즐기고 또 나누자. 후회 없도록 말이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 하청 노동자 고(故) 김충현(50) 씨가 지난 3월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가 쓴 '쿠오레'를 읽고 자필로 남긴 서평 글귀의 일부다.
사고를 당하기 불과 7일 전에도 한국기술대학교 직업훈련교사 보수교육을 듣고 '뜻깊은 시간'이라고 후기를 남겼다.
그러나 쇳덩이를 깎으며 더 나은 내일을 바랐던 노동자의 뜨거웠던 삶은 김용균이 바스러졌던 그곳에서 너무도 허망하게 식어버렸다.
2018년 태안화력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 사고는,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위험은 하청에만 떠넘겨지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공론화한 계기가 됐다.
고용노동부 집계조사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발전 5사(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발전소 산재사고 부상자 348명 중 340명(97.7%)이, 사망자 20명 중 전체가 하청 노동자였음이 확인됐으며 김용균씨 사망 사고로 이런 현실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해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 6년여 노사정 차원의 재발 방지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발전소 산재 사고의 대부분은 하청노동자들에게 집중돼 위험의 외주화 현상은 여전하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21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 앞뒀던 지난 5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석탄화력발전소 검토사항'을 발표하고 당정에 전달했다.
이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4년 7월까지 발전 5사 발전소 산재사고 부상자 232명 중 193명(83.2%), 사망자 6명(100%)이 하청 노동자였다. 연도별로는 2019년 37명(사망 3명 포함), 2020년 49명(사망 1명 포함), 2021년 28명, 2022년 28명, 2023년 44명(사망 2명 포함), 지난해 7월 기준 13명으로 뚜렷한 감소세는 보이지 않는다.
◇ 원·하청 여부 따라 노동자 위험도 크게 달라
화력발전 협력사(자회사·하역업체·하청업체) 노동자의 작업 관련 신체 손상·중독치료 경험은 원청 노동자보다 각각 5.6배, 5.9배, 6.4배 더 높다고 한다.
이는 김용균 사고를 조사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석탄화력발전소 1만31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데 바탕을 둔 수치다. 화력발전 협력사의 노동자들은 발전소 원청 노동자나 일반임금 노동자보다 고혈압, 당뇨, 우울증, 천식 등 질환 유병률은 더 높았고, 치료율은 더 낮았다.
노동자 개인 수준에서 위험을 가장 증가시키는 요인은 안전 정보제공의 미흡, 피로, 높은 직무요구도 등으로 파악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발전 5사 사장에게 하청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권고하며 특조위 조사 결과를 인용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터빈 등 핵심 시설 운전만 발전사가 직접 고용한 정규직이 투입되고 연료·환경설비 운전·정비 등은 모두 외주화하는데 입찰 경쟁으로 저가 낙찰이 관행이 되며 하청 노동자의 안전 문제는 비용으로 치환됐다"며 "하청 노동자의 안전 환경과 업무시간, 임금 격차는 물론 장비·보호구 지급, 식당·휴게실 이용 등 일상적인 차별까지도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김충현 씨는 지난 2일 오후 2시 30분께 태안화력발전소 내 한전KPS 태안화력사업소 기계공작실에서 발전설비 부품을 절삭가공 하다 기계에 끼이는 사고로 숨졌다. 김씨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의 원청 한전KPS의 하청업체인 한국파워O&M 소속이다.
이번 사고는 태안화력에서 입사 3개월에 지나지 않았던 김용균(당시 나이 24세) 씨가 심야 근무 중에 컨베이어벨트 이상을 확인하다 기계에 몸이 끼인 채 숨진 지 6년여만에 발생했다.
coolee@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