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죽은 자리에서 거듭 죽고 넘어진 그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변하지 못하는 것인가."
소설가 김훈은 6년 전 고(故) 김용균 백서 '김용균이라는 빛' 북콘서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정말 바뀔 것으로 기대한 노동자들의 희망도 잠시였다. 노동 현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 김용균 특조위 '22개 권고안'·약속에도…"현장 바뀌지 않아"
김용균 사망사고 이후 사회적으로 여러 개선 노력이 있었으나, 노동 현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16명의 조사위원으로 김용균 사고를 조사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는 4개월간의 심층 조사를 통해 2019년 22개의 개선 권고안을 내놨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조위는 2차 하청노동자까지 직접고용을 권고했으나, 정부는 거부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권고안 이행은 안전관리자를 일부 증원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
특히 발전설비 업무 외 고 김충현 씨가 속했던 발전소 유지·보수 업무는 상대적으로 배제됐다.
1차 하청근로자였던 김용균 씨 사고가 석탄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발생했다 보니 '발전설비' 분야에서만 개선 논의가 이뤄졌고, 시스템 점검도 1차 하청업체까지만 이뤄졌다.
김충현 씨가 속했던 2차 하청업체와 발전소 유지·보수 등 발전설비 외 업무는 관심에서 멀어진 사이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노동계의 분석이다.
◇ 비합리적 고용구조·발전소 폐쇄 속 사각지대 내몰린 N차 하청 근로자
김용균 씨 사고로 제정된 이른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역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도급 금지 범위를 유해 화학물질 대상 작업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 법이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김충현 사고 대책위 관계자는 "원청은 외주화를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도급 계약을 맺을 때는 하청업체들의 경쟁을 유발해 비용을 낮춘다. 이런 구조 속에서 안전 관리에 대한 하청업체의 투자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전KPS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충현 씨의 소속 회사는 9년 사이 8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화력발전소 폐쇄를 앞두고 필요 인력을 충원하지 않은 것도 사고 위험을 가중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책위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이 태안화력발전소 폐쇄를 앞두고 있으니 필요 인력을 충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발전소는 인력 충원 등에 투자하지 않은 채 쪼개기 계약으로 버텨왔고 피해는 가장 취약한 집단에 가중됐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서부발전은 발전소 규모를 줄이는 과정에서 추가로 인력을 고용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변명일 뿐"이라며 "가동을 멈추는 그날까지는 최대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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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