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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러시아가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는 인구 문제, 출산율 감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출산율 끌어올리기에 부심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5선에 성공한 뒤 새 국정 과제의 하나로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을 1.6명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러시아의 합계출산율은 2015년 1.78명을 기록한 이후 계속 감소세다. 특히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한 이후 많은 젊은 남성들이 전장에서 숨지거나 다치면서 인구 위기의식이 더욱 커졌다.
러시아는 다자녀·대가족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국가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 두 명의 자녀를 낳아야 하고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는 세 명 이상의 자녀를 낳아야 한다", "대가족이 러시아 국민 삶의 표준이 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스크바 곳곳에서는 대가족의 화목한 모습을 강조하는 광고가 자주 눈에 띈다. 반면 자녀 없는 삶을 매력적으로 그리는 것은 법으로 금지됐다. 인터넷과 미디어, 광고 등에서 자녀 없는 삶을 장려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지난해 통과됐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 아이디어도 쏟아지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다자녀 가구에 대한 주택 마련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은 가운데 레오니트 슬루츠키 하원(국가두마) 의원은 자녀 수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차등해야 한다면서 1자녀는 6%, 2자녀는 3%, 3자녀 이상은 0%로 설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해 유급 출산 휴가 기간을 현행 1년 6개월에서 3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거론된다. 학령기 자녀를 둔 직장인에게는 매년 새 학년이 시작하는 9월 1일을 휴무일로 지정하자는 제안도 있다.
여성이 많은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이른 나이 첫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아기를 낳은 대학생에 대한 출산 지원금 확대도 그중 하나다. 20대 초반에 자녀를 낳아도 학업과 육아를 모두 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옛 소련 시절 인구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징수했던 '무자녀세'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일부 주(州)에서는 낙태 금지 조치를 도입했다.
다양한 출산 장려 대책 중에는 호응받는 아이디어도 있지만, 여성의 권리를 제약하거나 여성을 출산 도구로 본다는 비판을 받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미봉책에 불과한 정책들만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양질의 교육, 임금, 사회보장, 의료 등 사회 전반적 기반이 안정돼야 청년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 혜택을 제공하기보다는 애국심에 호소해 출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브치옴(VCIOM)의 발레리 페도로프 소장은 러시아 매체 가제타 인터뷰에서 "부모들은 일을 많이 하고 삶을 즐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 자녀가 표준이 됐다"며 "아이를 전혀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적지만 둘 이상 낳을 여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은 아직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출산율은 계속 줄고 있고, 해결책을 계속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구 위기가 발등에 떨어진 상황에서 뭐라도 해보려고 얼핏 황당해 보이는 정책까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러시아를 비웃기는 어렵다. 러시아의 출산 장려 정책 관련 기사에는 한국의 뼈 아픈 상황이 자주 언급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연례 기자회견에서 출산율 문제에 대해 "다른 많은 나라의 출산율은 더 낮다. 일본과 같은 일부 선진국들의 출산율도 여전히 더 낮다. 한국의 경우는 0.7%(지난해 합계출산율 0.75명)로 걱정스럽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 더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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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