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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OA는 지난 25년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30여개국이 미국 시장에 섬유, 자동차, 광물 등 다양한 품목을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도록 보장하며 아프리카 산업화와 고용 창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미국으로서도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대응해 AGOA를 활용하는 등 아프리카와 관계에서 '소프트 파워'를 행사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른바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을 선언하며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면서 AGOA의 무관세 혜택은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 일각에서는 AGOA가 '좀비 상태'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1일부터 아프리카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한 기본관세 10%와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30%), 레소토(50%) 등 특정국에는 훨씬 높은 보복 관세를 예고했다.
연간 20억 달러(약 2조7천503억원) 이상의 차량과 자동차 부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남아공은 이미 4월과 5월 대미 자동차 수출량이 전년 동월 대비 각각 80%, 85% 감소하며 공급망 혼란과 지역 제조업 위축, 대규모 일자리 위기가 초래됐다.
섬유 수출의 90% 이상을 미국 AGOA에 의존해온 레소토는 미국의 원조 중단과 50%의 보복 관세로 청년 실업률이 38%에 달하고 약 4만 개의 일자리가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관세 충격과 실업률 급증으로 최근에는 국가재난사태까지 선포했다.
4월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원조(Aid)에서 무역(Trade)으로의 전환'을 줄곧 강조했다. 지난 9일에는 가봉, 기니비사우, 라이베리아, 모리타니, 세네갈 등 서부 아프리카 5개국 정상을 백악관에 초청해 오찬을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가봉, 세네갈 등 특정국을 관세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그 배경에는 자원 확보와 지정학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아프리카 정상들은 나름 전략적 대응에 나섰다. 오찬에 참석한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영어 칭찬'에 정치적 제스처로 화답하며 미국 투자 유치와 천연자원 개발 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가봉 대통령은 "우리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원자력·리튬·망간 등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며 미국의 투자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남아공은 미국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특사의 방미가 거부되는 등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갈수록 많은 아프리카 국가가 중국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중국이 이미 아프리카 53개국에 무관세 수출을 허용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 오는 9월 AGOA가 아무런 조정이나 연장 없이 그대로 종료된다면 미국으로서는 대아프리카 외교에서 레버리지(지렛대)를 하나 잃는 셈이다. 연장되더라도 관세 폭탄과 정치적 압박이 지속된다면 지금처럼 좀비 상태로 연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만료나 단순한 연장이 아닌 진화가 필요한 이유다.
hyunmin623@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