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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조력 존엄사, 이젠 꺼내놓고 논의할 때

기사입력 2025-07-25 08:07

[연합뉴스TV 제공]
(EPA=연합뉴스) 2018년 5월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별세한 104세 호주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의 의사조력자살 발표 기자회견 모습.[재배포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지난 세기말 미국에선 '죽음의 의사'(Dr.Death)로 불린 잭 키보키언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1990년대에 중증 환자 약 130명에게 약물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안락사를 도왔다. 이 방식은 능동적 안락사로 불리는데, 요즘엔 조력 존엄사 또는 의사조력자살이란 용어를 쓴다. 키보키언은 1998년 루게릭병 환자에게 약물을 주입해 사망케 하고, 그 장면을 CBS '60분'에서 방영되게 한 혐의로 의사 면허를 뺏기고 징역형을 받았다. 이렇게 한 건 안락사를 사회 쟁점화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력 존엄사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바뀌어왔다. 최근 몇 년 사이엔 모든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조력 존엄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다. 가깝게는 지난 5월 성인 남녀 1천 명을 상대로 한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 온라인 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84%가 조력 존엄사 도입에 찬성했다. 지난 2월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서도 조사 대상 1천21명 중 82%가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했다. 찬성 이유는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게 불필요'(41.2%), '자기 죽음을 결정할 권리'(27.3%), '죽음의 고통 경감'(19.0%) 등으로 나타났다.

민주사회에서 이 정도 찬성률은 제도를 당장 시행해도 저항이 미미할 만큼 압도적 비율이다. 그런데 이처럼 수년째 국민 대부분이 찬성한다는데도, 왜 관련 논의는 지지부진할까.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된 적 있으나 제대로 심의조차 못 거친 채 묻혔다. 여기엔 민감해 보이는 주제라면 테이블 위에 올리는 것 자체를 막는 폐쇄적인 우리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논란 가능성이 있다 해서 공론의 장 자체를 열어주지 않는 건 비민주적이고 교조적이며 반지성적이다. 다수 목소리를 제도에 반영하고 끊임없이 개선하려는 노력이 역사의 진보이고 열린 민주사회로 가는 길이다.

죽음에 대한 우리만의 독특한 인식도 작용하는 듯하다. 서구나 일본 등과 달리 우리는 죽음을 멀리 있는 것, 또는 말해선 안 될 금기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간 수명엔 한계가 있고 당장 사고로 명을 달리할 수도 있다. 매분 매초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선 게 사람 운명이다. 서구 선진국민들은 우리보다 죽음에 초연한 편이다. 장례 문화도 다르고 대형 사고 때 유족들 반응도 다르다. 서구인들에겐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걸 기억하라)가 의식구조 속에 잠재한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영생의 존재가 아니라는 걸 자주 망각한다.

국내 조력사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해외에선 이를 허용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의회 민주정의 원조인 영국도 지난 달 하원에서 조력 사망 법안을 의결했다. 스위스, 네덜란드, 캐나다, 호주, 벨기에, 뉴질랜드 등도 조력 존엄사가 허용된 주요 국가다. 작년엔 네덜란드 총리까지 지낸 영향력 있는 인물이 부인과 동반 조력자살로 타계해 화제가 됐다. 미국도 오리건을 비롯한 일부 주에서 조력 존엄사 제도가 시행 중이다. 우리는 2018년부터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연명치료 중단만 제한된 조건 안에서 가능하다. 이런 탓에 일부 국민은 조력사를 허용해달라는 위헌 심판을 청구했고, 일부는 큰돈을 들여 스위스까지 날아가 조력사로 생을 마치기도 했다.

조력사 논쟁의 핵심은 자기 존엄을 지키려는 결정권과 근원적인 생명 존엄성 가운데 어떤 가치가 우위에 있느냐다. 대체로 조력사 허용 국가들이 '자유'를 중시하는 서구 국가들이 많다는 건 자기 결정권에 더 무게를 둔 때문으로 보인다. 집단주의나 전체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들은 대체로 생명 존엄성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더 부각된다. 우리 사회의 경우 근현대화 과정을 초고속으로 거치는 동안 의식 구조도 급변해왔다. 이참에 국민 의식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어느 척도에 와 있는지 짚어보는 의미에서도 조력사 문제를 본격적으로 토론할 때가 됐다. 초고령 사회에서 한계에 달한 건강보험과 연금 재정, 수요를 못 따르는 의료 공급 등과 함께 자살 증가에 대한 우려를 포함한 윤리 문제도 당연히 함께 논의돼야 한다.

'100세 시대'라는 말처럼 기대수명은 많이 늘었지만, 삶의 질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건강수명'의 증가 속도는 그만큼 빠르지 않은 것도 근본적 한계다. 고령자가 생계를 이어갈 일자리도 많지 않다. 우리가 오래 살 수 있게 된 건 팩트지만 그 시간이 행복할 거라 장담하긴 어렵단 뜻이다. 인구 구조에서 고령자가 많아지자 암, 치매, 대사 질환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비율도 함께 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원래 이런 질환이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니 인간이 나이 들면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솔직히 치매에 걸려 '내가 나'인 줄도 모른 채 살거나 암 환자로 중환자실에 갇혀 독한 약물에 시달리다 생을 끝내긴 싫다. 가족과 사회에 폐를 끼치기도 싫고, 젊은 미래 세대에게 내 의료비를 전가하기도 싫다. 여러 조사에서 연명치료 중단을 원하는 응답자가 든 이유 중 가족의 병시중 고통, 가족의 경제적 부담 등이 많았던 걸 보면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leslie@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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