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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에서 이 정도 찬성률은 제도를 당장 시행해도 저항이 미미할 만큼 압도적 비율이다. 그런데 이처럼 수년째 국민 대부분이 찬성한다는데도, 왜 관련 논의는 지지부진할까.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된 적 있으나 제대로 심의조차 못 거친 채 묻혔다. 여기엔 민감해 보이는 주제라면 테이블 위에 올리는 것 자체를 막는 폐쇄적인 우리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논란 가능성이 있다 해서 공론의 장 자체를 열어주지 않는 건 비민주적이고 교조적이며 반지성적이다. 다수 목소리를 제도에 반영하고 끊임없이 개선하려는 노력이 역사의 진보이고 열린 민주사회로 가는 길이다.
죽음에 대한 우리만의 독특한 인식도 작용하는 듯하다. 서구나 일본 등과 달리 우리는 죽음을 멀리 있는 것, 또는 말해선 안 될 금기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간 수명엔 한계가 있고 당장 사고로 명을 달리할 수도 있다. 매분 매초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선 게 사람 운명이다. 서구 선진국민들은 우리보다 죽음에 초연한 편이다. 장례 문화도 다르고 대형 사고 때 유족들 반응도 다르다. 서구인들에겐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걸 기억하라)가 의식구조 속에 잠재한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영생의 존재가 아니라는 걸 자주 망각한다.
조력사 논쟁의 핵심은 자기 존엄을 지키려는 결정권과 근원적인 생명 존엄성 가운데 어떤 가치가 우위에 있느냐다. 대체로 조력사 허용 국가들이 '자유'를 중시하는 서구 국가들이 많다는 건 자기 결정권에 더 무게를 둔 때문으로 보인다. 집단주의나 전체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들은 대체로 생명 존엄성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더 부각된다. 우리 사회의 경우 근현대화 과정을 초고속으로 거치는 동안 의식 구조도 급변해왔다. 이참에 국민 의식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어느 척도에 와 있는지 짚어보는 의미에서도 조력사 문제를 본격적으로 토론할 때가 됐다. 초고령 사회에서 한계에 달한 건강보험과 연금 재정, 수요를 못 따르는 의료 공급 등과 함께 자살 증가에 대한 우려를 포함한 윤리 문제도 당연히 함께 논의돼야 한다.
'100세 시대'라는 말처럼 기대수명은 많이 늘었지만, 삶의 질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건강수명'의 증가 속도는 그만큼 빠르지 않은 것도 근본적 한계다. 고령자가 생계를 이어갈 일자리도 많지 않다. 우리가 오래 살 수 있게 된 건 팩트지만 그 시간이 행복할 거라 장담하긴 어렵단 뜻이다. 인구 구조에서 고령자가 많아지자 암, 치매, 대사 질환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비율도 함께 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원래 이런 질환이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니 인간이 나이 들면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솔직히 치매에 걸려 '내가 나'인 줄도 모른 채 살거나 암 환자로 중환자실에 갇혀 독한 약물에 시달리다 생을 끝내긴 싫다. 가족과 사회에 폐를 끼치기도 싫고, 젊은 미래 세대에게 내 의료비를 전가하기도 싫다. 여러 조사에서 연명치료 중단을 원하는 응답자가 든 이유 중 가족의 병시중 고통, 가족의 경제적 부담 등이 많았던 걸 보면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leslie@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