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은 인류 역사에서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권력과 우아함, 속도와 자유의 상징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전차 경주에서부터 중세 기사들의 위엄 있는 기마행렬, 근세 유럽 귀족들의 사냥과 승마까지, 말은 언제나 지배층의 권위와 세련된 취향을 대변해왔다. 특히 19세기 유럽에서 승마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상류사회의 필수 교양이자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가죽 가방, 스카프, 의류로 영역을 확장했지만 브랜드의 DNA에는 여전히 말의 정신이 깊이 새겨져 있다. 에르메스는 여전히 안장 등 승마 용품을 생산할뿐만 아니라, 시그니처 '카레' 실크 스카프에 말과 기수, 마구를 주제로 한 디자인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매장 곳곳에서 말 조형물과 안장 형태의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다. 듀크와 마차부가 그려진 에르메스의 상징적인 로고는 오늘날에도 브랜드의 뿌리를 말해준다.
|
랄프 로렌은 말과 가장 직관적으로 연결된 브랜드다. 1967년 창립 당시부터 '폴로'라는 명칭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브랜드 로고에는 말을 탄 폴로 선수가 말렛을 든 모습이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랄프 로렌은 실제로 폴로 경기를 본 적도 없었지만, 이 귀족적 승마 스포츠가 상징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매료되어 브랜드명으로 선택했다. 이후 친구의 초대로 처음 폴로 경기를 관람한 경험은 그의 브랜드 철학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말과 기수가 하나 되어 보여주는 완벽한 조화, 경기장을 질주하는 말의 역동성, 그리고 이를 둘러싼 상류층의 우아한 분위기에서 그는 자신이 꿈꾸던 브랜드의 모든 것을 발견했다. 말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자유와 귀족적 품격, 미국적 가치를 구현하는 상징이었던 것이다.
|
이들 외에도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마구용품 전문점에서 출발했거나 말 관련 상징을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채택했다. 당시 승마용품이 귀족층의 전유물이었던 만큼, 명품 브랜드들이 말에서 영감을 받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이러한 전통은 변함없이 계승되어 왔다. 실제로 승마는 유럽과 미국 상류층 문화의 핵심 요소였고, 이를 뿌리로 하는 브랜드들은 시대가 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클래식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말에서 시작된 명품 브랜드들의 DNA는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증명해왔다. 현대 소비자들이 이들 브랜드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히 제품의 완성도 때문만이 아니라 브랜드가 가진 럭셔리의 본질 때문일 것이다. 말은 경마장이나 목장을 넘어 명품 매장과 런웨이에서도 달리며, 여전히 우리에게 진정한 럭셔리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