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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는 손해배상 청구 소극적…"경찰력 낭비에 책임 묻는 분위기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빛나 기자 = 최근 폭발물 설치 협박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관련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에 폭발물을 설치하겠다는 예고가 이어지면서 경찰력 낭비는 물론 영업장 피해 등 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8월에만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용인 에버랜드,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등이 폭발물 협박 대상이 됐다.
폭발물 위협 행위를 처벌하는 공중협박죄가 올해 3월 시행된 뒤 나온 첫 판결 또한 처벌 수위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사제폭탄을 들고 거리에서 테러 협박을 한 남성에게 최근 서울남부지법은 벌금 600만원형을 선고했다. 피고인에게 지적장애가 있고 일반적인 공중협박 사례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감안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양형 이유였지만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온라인에서는 미국 같은 곳에서는 폭발물 설치 협박을 할 경우 벌금 뿐 아니라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면서 우리나라도 배상금이 두려워서라도 이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해외에서는 폭발물 설치 위협 사건에 대해 배상 책임을 어떻게 부과하는지, 배상금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살펴봤다.
◇ 올해 3월 시행된 공중협박죄…벌금 규모 해외와 비슷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폭발물 위협을 가하는 행위는 형법상 공중협박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비살인죄, 협박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등으로 처벌하다 올해 3월부터 공중협박죄가 시행됐다. 공중협박죄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한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형법상 벌금 규모는 우리나라나 해외나 비슷하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내놓은 '살인예고 등 불특정 다수에 대한 위협행위 규제 논의의 쟁점' 보고서(2023)에 따르면 미국 연방법 제875조는 불특정 다수에게 위협을 가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거나 징역형과 벌금형을 함께 부과하고 있다. 또 텍사스, 캘리포니아, 펜실베이니아, 미시간주에서도 형법에서 공중협박 행위를 다루고 있다. 미시간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에서는 공중협박죄의 법정 최고형은 5년 또는 10년으로 규정됐다. 벌금형은 2만달러(약 2천790만원)를 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다수를 상대로 하는 위협이 포함된 글이 전송만 돼도 범죄가 성립한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는 이를 두고 "상대방이 이러한 위협을 실제로 인식할 수 있는지를 불문하고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범죄 성립 범위가 굉장히 넓어질 수 있는 위험성도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즉, 학교 등 공공장소를 대상으로 폭탄테러나 총기 난사를 저지르겠다는 내용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거나 문자, 메일을 전송하는 것만으로도 범죄가 성립한다.
유럽 국가 중에서는 독일과 영국이 관련 범죄에 벌금을 부과한다. 독일은 형법에 '범죄위협에 의한 공공평온교란죄'를 규정하고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고 있다. 벌금형은 개인의 소득에 따라 부과된다.
영국에서 허위로 폭발물 위협을 하는 행위는 기소 유죄 판결이 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중범죄다. 약식 유죄 판결의 경우 징역형 또는 1천파운드(약 187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는 형법에서 '대중협박죄'를 규정하고 사안에 따라 3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 벌금형은 따로 없다.
◇ 해외는 폭발물 위협했다간 억대 배상금…경찰력 동원에도 배상
해외는 형법상 처벌과 별개로 폭발물 설치 위협에 대한 배상 요구가 활발하다.
무엇보다 폭발물 위협으로 인해 동원된 경찰력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올해 5월 인스브루크 한 중학교에서 13세 소년이 학교에 "총기를 난사하겠다"고 위협하는 전화를 걸어 경찰이 출동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해당 소년의 가족에게 1만1천유로(약 1천780만원)를 청구했다.
미국에서는 2014년 한 남성이 목소리를 변조해 "차에 폭탄이 설치됐다"고 여동생에게 장난 전화를 걸었다가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장난 전화 때문에 고속도로가 3시간 동안 폐쇄됐다. 법원은 이 남성에게 고속도로 순찰대와 샌디에이고 경찰에 총 7천270달러(약 1천8만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폭발물 위협으로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피해를 본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규모는 더욱 커진다.
미국에서는 2022년 29살의 한 남성이 일리노이주 한 회사에 "폭탄 폭발까지 2분 남았다"고 위협 전화를 걸었다가 '배상금 폭탄'을 맞았다.
이 남성은 징역 3년형과 함께 45만6천달러(약 6억3천800만원)를 해당 회사 측에 배상하게 됐다. 위협 전화로 회사 직원이 대피하는 등 회사의 피해 사실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2003년 독일에서는 뒤셀도르프 공항에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전화를 걸었던 여성에게 2007년 법원이 20만7천유로(약 3억3천600만원)를 공항측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장난 전화로 항공편이 일부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1만5천여명의 승객이 대피한 데 따른 피해를 인정한 것이다.
◇ 국내에선 손해배상 청구 극소수…"경찰력 낭비 책임 물어야"
그러나 국내에서는 폭발물 위협 사건에 대한 경찰력 동원 등 배상금을 청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편이다.
법무부는 2023년 8월 "제주공항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협박 때문에 경찰 571명이 동원된 사건에 대해 경찰관 수당 등 비용을 근거로 약 3천200여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폭발물 위협 사건은 아니지만 법무부는 2023년 서울 신림역에서 여성 20명을 살해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경찰관과 기동대 등 703명이 투입된 '신림역 살인예고' 사건의 범인에 대해 4천37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두 소송 모두 현재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는 "이런 상황에 대비한 출동 또한 국가기관의 업무이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기업들도 여론을 의식하고 있어 공중협박죄가 강화된다고 해도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다소 어려운 면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고, 특히 경찰력 동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경찰 자원이 그 지역 주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우리는 국가경찰 시스템에 오랫동안 익숙해 있다 보니까 배상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 만약 자치경찰제가 지금보다 더 활성화된다면 그 지역 주민들이나 지방의회에서 경찰력이 낭비됐다는 요구가 강해질 것"이라며 "지역 주민들을 위한 정당한 치안 서비스를 위해서 경찰 자원이 활용돼야 하는데 (폭발물 협박 등으로) 낭비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na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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