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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백두혈통의 부르주아 명품 사랑 유전자

기사입력 2025-09-12 10:49

(베이징 타스=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베이징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찬 손목시계는 스위스 명품 시계 IWC 샤프하우젠의 포르토피노 오토매틱으로 추정된다고 미 북한전문 매체 NK뉴스가 보도했다. 2025.09.03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3일 김 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별도 회담을 위해 푸틴 대통령의 전용 리무진 '아우루스'에 탑승할 때 차량에 함께 타고 있다. 김여정이 든 가방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티앙 디오르' 제품으로 추정된다. 2025.9.3 [크렘린궁 영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nk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근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은 여러모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첫 다자외교 데뷔전인 데다 어린 딸 주애까지 데려가는 등 정치적 의미가 컸던 행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중량감 있는 이슈만큼이나 가벼운 뒷얘기 거리도 적지 않았다. 특히 '백두 혈통'으로 불리는 김씨 왕조의 해외 명품 사랑은 이번에도 화제가 됐다.

김정은이 방중 기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날 때 손목에 올린 시계는 스위스 명품인 'IWC 샤프하우젠'의 2천만 원 상당 오토매틱 모델로 추정됐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스위스 명품 시계 중 최고로 치는 '파텍 필립'의 수억 원대 초고가 모델도 보유했지만, 가장 많이 노출된 브랜드는 IWC였다. IWC는 '제국주의 군대를 찬양하는 할리우드 부르주아 영화'의 대명사 격인 '탑건'에서 조종사들이 차고 나오는 시계다. 오빠를 수행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검정 백을 든 모습도 시선을 모았다. 가격은 약 1천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23년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도 이 핸드백을 들었다.

'백두 혈통'의 명품 사랑은 유전적 성향을 보인다. 선대인 김일성과 김정일도 스위스 명품 시계 팬으로, 특히 '오메가'를 좋아했다. 김일성은 충성심 높은 관리 등에게 자기 이름을 새긴 오메가 시계를 하사했다. 김정일은 국민이 굶어 죽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이탈리아 명품 구두와 정장, 각종 보석, 초고가 독일제 리무진 등을 사들였다. 김정은 역시 만년필, 자동차 등까지도 해외 명품 브랜드만 찾는다. 김여정은 디오르 외에 이탈리아 명품 불가리의 가방도 애용한다.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 역시 샤넬과 디오르의 가방, 구찌 원피스, 티파니 목걸이 등으로 치장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어린 딸 김주애 역시 디오르 외투를 입거나 구찌 선글라스를 쓴 모습이 공개된 적 있다.

역설적이다. 서방 자본주의 진영에 맞서는 주체사상이 핵심 이념인데도 대놓고 서방 명품을 향한 애정을 대를 이어 드러낸 것이다. '자본주의 문화'를 인민 정신을 더럽히는 악으로 규정하고 서구 대중문화를 접하는 것조차 금지한 행태와 배치된다. 다수 국민이 빈곤에 시달리는데 극소수 권력층만 사치를 일삼는 건 김정은이 내세운 '인민대중제일주의'가 허상임을 보여준다. 작년 정부 자료에 따르면 김정은 일가 약 100여명이 쓰는 사치품 비용이 연간 8천3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식량난에 시달려온 북한의 곡물 부족분 구매비를 대체할 수준이라고 한다. 유엔 보고서 등 국내외 통계에 따르면 북한 인구 절반가량이 영양 부족 상태이고 1인당 연간소득은 약 160만 원 수준이다. 정상 국가라면 권력 전복 움직임이 일겠지만, 공포 정치 속에서 억압과 세뇌를 받아온 북한 국민은 그럴 엄두조차 못 낸다.

유명 브랜드 앞에선 '전가의 보도'인 반일 기조마저 무색해지는 점도 흥미롭다. 반일은 북한 체제 정통성을 유지하는 핵심 기반이면서 북한, 중국, 러시아를 하나로 묶는 공통된 역사적 경험이자 결속 코드다.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설정하면 다른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 '항일 빨치산'은 일종의 신앙이다. 그렇다면 지도층은 통치 원리상 일본 제품을 쓰는 것조차 조심해야 하나 김정은 일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김정은은 토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 상위 모델을 애용하고, 니콘 쌍안경으로 미사일 발사 장면을 지켜본다. 공식 식사 자리에서 김주애 앞에 일본 식품 기업 '아지노모토'의 조미염 제품이 놓였다는 보도도 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세이코' 시계는 최고존엄의 하사품으로 쓰였다. 백두 혈통의 이율배반적 언행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하다.

leslie@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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