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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마약 투약 사범 10명 중 5명 이상이 치료나 교육 등 아무런 조건 없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사회로 복귀하고 있는 현실이 드러났다.
12일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제출한 '마약류 중독 치료·재활 유관기관 역할 재정립 및 연계 방안 마련'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마약 투약 사범 8천489명 중 절반이 훌쩍 넘는 4천718명(55.6%)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 중 3천165명(전체의 37.3%)이 별다른 조건 없이 풀려나 사실상 아무런 제재나 치료적 개입 없이 방치됐다는 점이다.
치료 조건부 기소유예는 단 14명(0.2%)에 불과했고, 교육 이수 조건부(14.8%)나 선도 조건부(3.3%)를 모두 합쳐도 미미한 수준이다.
이는 마약 중독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 아닌 '범죄'로만 취급해 온 우리 사법 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 결과, 마약사범 재범률은 최근 5년간 30%를 웃돌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치료를 담당하는 병원, 처벌을 결정하는 검찰, 재활을 맡은 기관이 제각각 흩어져 있어 환자 중심의 통합적인 관리가 불가능하다고 오랫동안 지적해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법무부, 대검찰청, 보건복지부 등과 손잡고 '사법-치료-재활 연계모델'을 2023년 6월 중순에 시범 도입한 데 이어 지난해 4월부터 전국으로 확대 시행했다.
이 모델은 마약류 기소유예자를 대상으로 전문가위원회가 개별 중독 수준을 정밀 평가해 치료가 필요하면 병원으로 연계하고, 맞춤형 사회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이 모델의 효율적 운영을 뒷받침할 핵심 인프라인 '함께한걸음센터'가 전국 17개 시도에 모두 설치 완료되며 정책 추진에 탄력이 붙었다.
마약퇴치운동본부 산하의 이 센터들은 마약 중독자들에게 실질적인 교육과 상담 등 사회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 거점 역할을 맡는다.
새로운 모델은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시행 이후 14차례의 전문가위원회를 통해 기소유예자 119명에게 맞춤형 프로그램이 제안됐다.
구체적으로는 병원 치료 연계 27명, 재활 교육 78명, 심리 상담 58명 등 개인의 상태에 따라 평균 2.7개의 프로그램이 맞춤형으로 제공됐다.
한림의대 이상규 교수는 "마약 중독을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인식하고, 투약 사범을 범죄자가 아닌 환자로 보는 시각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며 이 모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연세대 보고서는 보호관찰관이 컨트롤타워가 돼 치료 전 과정을 관리·감독하고, 불응 시 기소유예를 취소하는 등 보다 강력한 치료 연계 모델을 제안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문 치료병원과 지역사회 재활 인력 등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마약은 단지 의지의 문제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처벌에만 의존하던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 사법, 치료, 재활이 촘촘하게 연계된 사회 안전망을 내실화해 마약류 중독자의 재범률을 낮추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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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