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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베이징=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정성조 특파원 = 네덜란드 정부가 중국 기업에 인수된 네덜란드 소재 반도체 업체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비상조치를 취함에 따라 첨단 기술과 제품·소재를 둘러싼 서방 측과 중국 측의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조치를 취한 날짜는 9월 30일이지만, 발표가 뒤늦게 이뤄졌다.
네덜란드 경제부가 "고도로 예외적"이라고 설명한 이번 조치 발동으로 네덜란드 경제부 장관이 넥스페리아 이사회 결정의 실행을 막거나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다만 통상적 생산활동은 계속된다.
네덜란드 정부는 "넥스페리아 내의 심각한 거버넌스상 결점들과 행위들"을 상품 가용성 법 발동 이유로 들면서 "이번 결정은 비상시에 넥스페리아가 생산한 제품(완제품 및 반제품)이 가용 불가능하게 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네덜란드와 유럽 땅에서 핵심적인 기술적 지식과 역량의 연속성과 이에 대한 보호에 대한 위협"이 있었다는 판단을 밝혔으나 상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넥스페리아로부터 모회사인 윙테크로 핵심 기술이 이전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윙테크는 네덜란드 정부의 발표가 나오기 몇 시간 전에 상하이 증권거래소 공시 자료를 통해 네덜란드 정부가 넥스페리아나 그 자회사들, 지사들, 사무소들의 자산, 지적재산권, 사업, 인력에 대해 윙테크가 앞으로 1년간 변동을 가하지 못하도록 9월 30일에 명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그 후 네덜란드 정부는 암스테르담 항소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장쉬에젱(張學政·Xuezheng Zhang) 윙테크 창립자 겸 회장이 갖고 있던 넥스페리아의 집행역 이사 지위와 넥스페리아의 지주회사인 '넥스페리아 홀딩'의 비집행역 이사 지위를 정지시켰다.
이에 따라 법원은 독립적인 외국인을 이사로 임명해 양사에서 결정적 의결권과 독립적 대표 권한을 가지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엑스페리아 주식 중 단 1주를 제외한 모든 주를 경영상 목적에 따라 앞으로 법원에 의해 지정될 개인이 수탁관리토록 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넥스페리아는 옛 '필립스 반도체'의 후신인 'NXP 반도체'에서 산하 '표준 제품 사업부'가 2017년 독립해 나온 기업으로, 2019년에 중국 윙테크(聞泰科技)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주요 생산 품목은 양극형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정전기방전(ESD) 보호, 과도전압억제(TVS) 다이오드, 금속산화막반도체전계효과트랜지스터(MOSFET), 논리 소자 등으로, 유럽의 자동차 업계와 소비자 가전업계에서 쓰이는 칩들이 포함돼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2023년에 넥스페리아가 반도체업체 노위 에너지를 인수하려고 시도하자 조사를 벌이다가 추후에 인수를 승인했다.
이에 앞서 2022년 11월에는 넥스페리아가 영국 소재 뉴포트 웨이퍼 팹을 인수하려고 시도하다가 영국 정부에 의해 제동이 걸린 적이 있다.
넥스페리아의 모회사인 윙테크는 2006년 중국 테크업체 ZTE 연구원 출신 임원 장쉬에젱이 창립한 기업으로, 미국 상무부가 지정한 이른바 '엔티티 리스트'(EL)라는 무역제한 대상 기업 목록에 포함돼 있다.
미국 기업들이 EL에 포함된 기업들과 거래하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특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윙테크는 네덜란드 정부의 조치에 대해 "사실에 기반한 위험 평가가 아니라, 지정학적 편견에 따른 과도한 간섭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윙테크는 "이번 조치는 유럽연합(EU)이 오랫동안 옹호해 온 시장 경제 원칙, 공정 경쟁, 국제 무역 규범에 심각하게 위배된다"며 "중국 소유 기업에 대한 이러한 차별적 대우에 강력히 항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넥스페리아는 "모든 현행 법률, 규제, 수출통제, 제재 조치를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소식이 알려진 13일 상하이 증권거래소에서 윙테크 주가는 10% 하락해 1개월 최저로 내려앉았다.
중국은 '합법적 권익'을 지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국가 안보 개념을 일반화해 특정 국가·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조치를 하는 것에 일관되게 반대해왔다"면서 "관련 국가(네덜란드)는 응당 시장 원칙을 준수하고 경제·무역 문제를 정치화해선 안 된다. 자신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익을 지키겠다는 중국의 결심은 확고부동하다"고 말했다.
린 대변인은 "윙테크 측이 중국 정부에 네덜란드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고 언급했는데, 중국은 어떤 도움을 제공하고 있나"라는 취재진 질문엔 "구체적인 상황은 중국의 주관 부문을 통해 파악하라"고 했다.
solatido@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