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 세계의 대기업"…캄보디아 알바사이트, 지금도 버젓이

기사입력 2025-10-1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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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온라인 스캠' 범죄조직과 전쟁에 나선 캄보디아 당국 합동단속반이 지난 8월 캄폿주에서 펼친 단속 작전에서 체포한 중국인들을 현지 크메르타임스가 보도했다. 이들 중국인 3명은 지난 8월 한국인 대학생이 캄보디아에서 고문당한 뒤 숨진 사건을 수사한 현지 검찰에 의해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1일(현지시간) 캄보디아 국영 AKP 통신에 따르면 전날 캄보디아 깜폿지방검찰청은 살인과 사기 혐의로 A(35)씨 등 30∼40대 중국인 3명을 구속기소 했다. 이들은 지난 8월 캄보디아 깜폿주 보꼬산 인근에서 20대 한국인 대학생 B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25.10.12 [크메르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1년간 피싱·대포통장 구인구직글 1만 8천건 올라온 '하데스'

피해 보상·경찰 인맥 홍보하며 미성년자까지 블랙홀처럼 모집

"이곳부터 일망타진해야"…협업 의혹에 관계당국 조치는 '감감'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공항까지 갔다가 겨우겨우 빚을 갚아 빠져나왔습니다. 결국 저를 뺀 3∼4명이 캄보디아와 베트남으로 갔는데 처음 이틀 동안은 연락이 닿다가 여태까지 답장이 없어요."

지난 6월 대포통장 모집책에게 이끌려 캄보디아에 갈 뻔했다는 30대 남성 A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하데스 카페'를 캄보디아 관련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했다. 보이스피싱과 대포통장 대여 등 이른바 '해외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중개해주는 대표 플랫폼이 여전히 버젓이 운영 중이라는 것이다.

14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이름을 딴 이 카페는 2023년 개설됐으며, 최근 1년여간 아르바이트를 구인·구직하는 등의 글이 1만8천여건이나 게시됐다. 고수익을 앞세워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에서 'TM(텔레마케팅) 직원' 또는 온라인 카지노 관리자로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글들이 수백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열띤 관심을 받고 있었다.

구인글을 통해 일주일에 400만∼500만원의 수익을 약속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정말 너무 힘들고 한국에서는 답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베트남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라"며 "돈만 있다면 주변의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풀리는 경우가 많다"고 유혹했다.

이날 새벽에는 '고등학교 1학년 미성년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계좌에 1만4천원 있다"고 일자리를 찾는 글이 올라왔다.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 가능하다"며 '미성년자 우대'를 내건 구인 글도 보였다.

대포통장 유통 업체들도 이 카페를 통해 적극적으로 명의자를 모집하고 있다.

한 업체는 참여자 1천700여명의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서 공무원증과 경찰 내부 메신저 화면을 보여주며 경찰과의 인맥을 여러 차례 자랑하기도 했다. '경찰 뒷배'가 있으니 안심하라는 취지이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업체는 대포통장에 들어온 범죄 수익금을 가로채고 도망간 명의자를 잡았다며 무릎 꿇리고 이발기로 머리를 미는 영상을 공개해 참여자들에게 겁을 주기도 했다.

업체 운영자는 "내가 (범죄수익) '먹튀' 당하고 다른 곳처럼 가만히 있을 것 같냐"며 "경찰 형님께 대화 내용과 거래 내역 제보 완료했다"고 알렸다.

A씨 역시 하데스 카페를 통해 캄보디아로 갈 뻔했다. 생활고로 불법 사금융 업체 돈을 갚지 못하자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라"며 카페를 통해 캄보디아의 대포통장 모집책과 접촉하라는 협박을 받은 것이다. 끝까지 버텼으나 한 달 만에 원금 50만원이 350만원으로 불어나자 결국 캄보디아행 항공권을 끊었다.

모집책은 A씨에게 현금 2천만원을 보여주며 "캄보디아에서 대포통장을 개설하고 일주일 뒤 한국에 돌아가라"고 말했다. "경찰에 붙잡히더라도 '납치당해 어쩔 수 없었다'고 진술하면 아무 이상 없을 것"이라며 A씨를 안심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A씨는 "대부업자와 모집책에 붙들려 공항까지 갔지만 생각할수록 말이 안 돼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빚을 갚고 빠져나왔다"며 "캄보디아에 도착하자마자 통장이 막힐 때까지 범죄에 가담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질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고 전했다.

지난 8월 캄보디아에서 납치돼 고문당한 끝에 숨진 대학생 박모(22)씨 또한 대포통장 모집책이었던 대학 선배의 소개로 캄보디아로 간 것으로 조사됐다.

연일 들려오는 한국인 대상 범죄 소식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으나 하데스 카페에서 구인하는 업체들은 오히려 이를 홍보의 기회로 삼고 있다. "캄보디아가 아닌 다른 지역은 안전하다"거나 "이 시국에 사고를 어떻게 치느냐"며 안심시키는 식이다.

카페 또한 '보증 업체'에 빨간 왕관 아이콘을 달아 홍보하고 있다. 운영자는 "(보증) 업체로부터 피해를 보았을 때 사실 여부를 확인해 인정되면 피해 금액을 보상해주겠다"고 공지하고 있다.

그러나 A씨는 "일이 잘못되면 납치·감금당하는 건데 한국에 무사히 와서 보상받는다는 게 가능하겠느냐"며 "실제로 보상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고 미끼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 카페는 '사칭 사이트'까지 등장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을 블랙홀처럼 끌어모으고 있으나 2년여 동안 웹사이트 주소 한번 바꾸지 않은 채 멀쩡히 운영되고 있다. 연합뉴스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이 사이트에 대한 시정·차단 조치를 한 적이 있느냐고 질의했으나 이날 정오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

A씨는 "'하데스 카페'는 해외의 검은돈에 관심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대기업과 같은 곳"이라며 "온갖 불법의 온상인 이곳부터 일망타진해야 캄보디아에서의 범죄들도 근절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취업 사기의 입구 역할을 하는 사이트에 대한 차단이 신속히 이뤄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브로커에 대한 철저한 색출이 시급하다"며 "중간에 다리를 놓는 등 캄보디아 현지 범죄조직과 협업 관계로 이어졌을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직간접적 연관성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away777@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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