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빠진 헝가리…푸틴의 석유냐 트럼프의 환심이냐

기사입력 2025-11-0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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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시아 사이서 줄타기하며 눈치 게임하는 오르반 총리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줄타기를 하며 눈치를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을 압박받아온 그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공언해온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 약속을 철회하지도 못한 채 두 강대국 정상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다.

이런 오르반 총리가 7일(현지시간)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어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는 미국은 헝가리를 상대로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해왔다.

헝가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 회원국이지만,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게 현실이다.

헝가리가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 물량은 전체 원유 수요량의 64%에 이른다.

친러시아 성향이 강한 오르반 총리는 이런 자국의 높은 에너지 의존도를 푸틴 대통령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EU 지도부를 비난하는 데 이용해왔다.

특히 오르반 총리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재선을 노리는 상황에서 친유럽·중도 성향의 야당 티서(Tisza)의 머저르 페테르가 최대 라이벌로 부상하자 유권자들에게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의 계속 공급을 내걸고 야권을 견제하는 데 주력해왔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오르반 총리는 최근 미국 정부가 러시아의 두 대형 정유사를 제재한 것을 두고 과한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헝가리 입장에선 그렇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헝가리가 미국의 계속되는 요구를 계속 무시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오르반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과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주력해왔다.

두 사람은 강한 보수성향과 국가주의적 세계관 등 서로 통하는 점이 많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오르반 총리를 "훌륭한 리더"라고 호평하며 그의 강한 보수성향과 민족주의적 메시지에 긍정적인 반응을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르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이번 정상회담에서 적어도 내년 총선까지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 압박을 하지 말아 달라고 설득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없이 헝가리는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온 오르반 총리로서는 자신의 논리를 하루아침에 뒤집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오르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장 원유 수입선을 바꾸기 어렵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헝가리는 자국의 정유시설 대부분은 유황 함량이 높은 러시아 우랄산 원유를 정제하는데 맞게 설계돼 있어 수입선을 러시아가 아닌 다른 나라로 바꾸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비슷한 처지에 있던 체코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끊고 수입선을 바꾼 전례가 있기에 헝가리가 미국의 요구를 계속 거부할 명분이 마땅찮은 것도 사실이다.

러시아산 원유에 크게 의존했던 체코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2022년 초부터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송유관의 개보수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한 데 이어 러시아산 원유에 맞게 설비된 정유소들의 설비도 고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난 4월 러시아산 원유의 완전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은 최근에도 이 문제를 놓고 헝가리를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매슈 휘터커 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헝가리가 러시아산 원유 의존 중단을 위한 아무 적극적인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BBC 방송은 이번 미·헝가리 정상회담을 전망하면서 "(오르반 총리의) 오랜 친구 트럼프가 협상을 타결짓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건 없다"면서 "오르반은 미국 대통령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졌는지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yonglae@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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