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하교 때쯤 풀메이크업…그냥 다른 애가 돼요"

기사입력 2025-12-16 08:39

(서울=연합뉴스) 이진주 인턴기자 = 지난 6일 한 올리브영 매장에서 어린이가 화장품을 구경하고 있다. 2025.12.16
(서울=연합뉴스) 이진주 인턴기자 = 지난 6일 양천구 목동 한 학원가 올리브영에서 학생이 화장품을 구경하고 있다. 2025.12.16
(서울=연합뉴스) 이진주 인턴기자 = 지난 6일 한 대형마트에서 아동용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다. 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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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어려지는 화장 연령대…14세 미만 아동까지

SNS엔 화장 영상 쏟아져…어린이 화장품도

"공부도 하고 화장도 하며 기분 전환해요"

"시대 변화 받아들여야" vs "어린 피부에 걱정"

"초보자들도 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한 학생 메이크업 같이 해요!"(인스타그램 이용자 'go_***')

"시험기간 초간단 makeup"(인스타그램 이용자 'xee***')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인스타그램 화장 영상들에 붙은 설명이다.

15일 현재 인스타그램에 '학생메이크업' 태그를 검색하면 조회수 100만을 훌쩍 넘긴 영상들을 수십 개 볼 수 있다.

중고등학생에 이어 만 14세 미만 아동까지 '화장 삼매경'이다. 더 이상 '어른'만 화장하지 않는다.

화장이 어느새 '청소년 문화'로도 자리 잡은 가운데 어린이용 화장품까지 판매되면서 외모지상주의 심화에 대한 '어른'들의 우려가 커진다.

◇ 장난감 코너에도 화장품세트…"화장이 취미가 됐어요"

지난 6일 오후 양천구의 올리브영 매장. "2025년 마지막 세일"이라는 점원들의 우렁찬 외침 속 고객들은 분주하게 화장품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가방에 형형색색 인형 키링을 단 채 립제품 코너에서 손등 '색칠놀이'에 빠진 학생들이 많았다. "틴트 제형이 매트(보송)한 것이 좋냐"는 물음에 "매트와 촉촉 그 중간이 좋다"고 답하는 대화도 들렸다.

매장을 지켜본 40분간 화장품을 구경하던 손님 13명 중 8명이 이런 중고등학생이었다. 부모와 함께 와 화장품을 구경하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청소년 손님이 많냐는 질문에 직원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날 양천구 한 대형마트 장난감 코너에서는 만 14세 미만 아동을 위한 화장품 세트를 판매하고 있었다. 선팩트·블러셔·립스틱·매니큐어·섀도 등 뷰티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장품 종류로 구성됐다. '사용연령 6세 이상'이라는 주의 문구도 보였다.

'시크릿쥬쥬'·'미미'·'티니핑' 등 인기 캐릭터와 결합한 아동용 화장품은 인터넷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청소년들은 왜 화장에 빠졌을까.

양천구 학원가에서 만난 이모(16) 양은 "제 스스로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보완할 수 있으니까 (화장을) 하게 되는 것 같다"면서도 "딱히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그냥 한다"며 웃었다.

중학교 2학년생 A양은 "화장이 취미가 됐다"며 "학교 갈 땐 피부랑 입술만 아주 연하게 하지만 가끔 놀러갈 때는 눈화장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부도 하고 화장도 하면서 기분 전환을 한다"고 덧붙였다.

◇ "애들 화장 열풍은 SNS 탓"…"초 5~6학년부터 화장"

이런 상황은 SNS가 큰 영향을 끼쳤다.

유튜브에서는 '겟 레디 윗 미'(get ready with me) 등 화장을 하는 영상이 쏟아진다. 검색창에 입력하니 노출되는 자동 완성 검색어 10개 중 4개가 청소년 관련 연관어다. '겟레디윗미 학생'이 2위, '〃 학생 메이크업'이 5위, '〃 학교/고등학교'가 8~9위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서도 화장품 소개 게시물이 수백 개 뜬다. 성인 인플루언서가 화장법을 추천하는 영상들 사이에서 청소년이 학교 갈 준비를 한다며 교복을 입고 찍은 화장 영상들도 수십 개 볼 수 있다.

지난달 게시돼 누적 조회수 36만회를 기록한 한 '학생 메이크업' 틱톡 영상에서 성인 인플루언서는 입술전용 화장품은 기본, 톤업 베이스·컨실러·치크·셰딩·하이라이터 등 피부전용 화장품뿐만 아니라 아이브로우·섀도 등 눈전용 화장품을 추천했다.

학원가에서 만난 이양은 "AI 목소리로 더빙을 넣고 화장하는 릴스를 자주 본다"며 "제가 여쿨(여름 쿨톤·퍼스널 컬러)인데 그런 사람들의 동영상을 참고해 화장품을 사기도 한다"고 말했다.

10대 딸을 둔 학부모 B씨는 "애들의 화장 열풍은 SNS 탓"이라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화장하는 영상이 넘쳐나면서 아이들이 혹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라고 밝혔다.

이어 "아이들이 화장품을 장난감, 필기류 사듯 모은다"며 "어떤 애들은 아침에 학교 가기 전 화장 하느라 1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며 개탄했다.

'귀밑 2㎝' 등 머리카락 길이도 단속하던 '옛날 옛적'과 달리 요즘 학교에서는 화장도 별반 단속하지 않는 분위기다.

중학생 한모(15) 양은 "이게 학교마다 (화장을) 잡는 정도가 다르다"며 "제가 다니는 학교는 하지 말라고 하긴 하는데 크게 티 안 날 정도로만 하면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끝날 때쯤 되면 풀메(풀 메이크업)하는 애들이 많다"며 "그냥 다른 애가 된다"고 웃었다.

분당에 사는 중1 박모 양도 "내 친구 10명 중 8명이 화장을 하고 6명은 색조까지 풀메를 한다. 초등학교 5~6학년부터 화장을 한다"며 "학교 선생님들이 뭐라고 하기도 하시지만 단속은 안 한다"고 밝혔다.

저렴한 화장품이 쏟아지는 것도 청소년층의 접근성을 높인다.

올리브영은 지난해 1월부터 만 14~19세를 대상으로 한 '올리브 하이틴 멤버스'를 만들고 회원에게 카테고리별 할인 쿠폰, 무료배송 등 혜택을 제공한다. 지난달에는 학생 응원 기념으로 수능이 끝난 후 일주일간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1만~3만원대를 벗어난 5천원 이하 가격대의 화장품도 대거 등장했다.

다이소는 뷰티 브랜드의 제품을 1천~5천원 가격대로 판매하고 있고, 이에 대응해 이마트도 '5천원 화장품 이마트에서 다 있소'라며 가성비 좋은 화장품 판매에 팔을 걷어붙였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브러시, 스펀지 등 화장품 도구와 속눈썹을 1천~4천원 가격대에 구매할 수 있다.

◇ "아이들의 문화"…"세심한 관찰과 지원 필요"

여론은 갈린다.

중학생 딸을 둔 고모 씨는 "중학생만 되도 거의 다 화장을 하는 것 같다"며 "어떤 엄마는 중학생 딸이 화장을 안 하자 또래 유행에 뒤처지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하더라"고 말했다.

SNS에는 "학생이 화장 안 한다는 건 부모님 시대에서만 맞다고 생각한다"(스레드 이용자 'kyb***'), "이제 시대가 변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할 것 같더라고"('ant***'), "화장은 아이들만의 문화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새로운 걸 익히고 친구들을 사귄다"('cow'***) 등 화장을 청소년 세대의 어엿한 문화로 인정해야 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단순히 화장을 못하도록 막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화장하는 법을 알려줘야 할 때라는 의견도 있다.

"피부 망가지기 전에 세안부터 잘 알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스레드 이용자 'ddo***'), "요즘 안 하는 애들 없어 차라리 올바른 클렌징이랑 기초케어 알려주는 게 좋을 듯"('shin***') 등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리진 전북대 아동학과 교수는 "하나에 꽂혀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이 아동기 때부터 나타난다"며 "사춘기로 넘어가면서 (학생들이) 스스로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다양한 곳에서 화장품을 접할 수 있게 됐다"며 "어른으로서 권하고 싶은 문화는 아니지만 청소년이 화장으로 스스로를 꾸미면서 자신에 대해 알아갈 수도 있다"고 짚었다.

갈수록 어려지는 화장 연령대에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딸이 초등학생이라는 김모(42) 씨는 "아직 앳된 나이에 어린 피부인데 화장하는 모습을 보면 괜찮을지 걱정이 된다"며 "옛날에도 화장을 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더 빨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초6 딸을 둔 또다른 학부모는 "화장하지 말라고 한번 그랬더니 생난리를 피웠다"며 "그 뒤로는 '알아서 해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SNS에도 "초6 따님 요즘 왜 이렇게 외모에 관심이 많은지"(스레드 이용자 'ski***'), "학생들 보니까 6학년쯤부터 조금 빠르면 5학년부터 화장도 조금씩 하고 꾸미기 시작하더라고"('cha***') 등 초등학생 딸을 둔 부모의 고민 상담이 이어졌다.

김 교수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건강하게 골고루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연예인을 우상화해 뽀얀 피부 등에만 꽂히게 되면 다른 것에 만족하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정에서 적절히 지지해 주면 시간이 지난 후 관심사가 화장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활동으로 확장될 수 있다"며 "다만 이러한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일부 학생들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과도하게 신경 쓰게 될 가능성도 있어 세심한 관찰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ju@yna.co.kr

<연합뉴스>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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