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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동양방송(TBC) 기술국으로 옮겼다가 1973년 삼성전자 개발실장으로 발탁됐다. 1982년 삼성전자 공장장일 때는 '이코노 TV' 수출에 앞장섰다. 1989년 삼성전자 정보통신 부문 대표이사를 거쳐 1992년 삼성종합기술원장을 지냈다. 삼성전자 정보통신 부문 대표 시절 국내 정보통신 업계에서 처음으로 연매출액 1조원을 돌파했다.
사위 채인택 전 중앙일보 기자는 "정부가 주도한 TDX 교환기 개발 사업에 참여하면서 삼성전자의 정보통신 분야를 크게 발전시켰다"며 "삼성종합기술원에 계실 때는 러시아의 레이저 기초기술을 들여와 산업에 응용하는 연구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1996년 한솔정보통신 사업단장을 거쳐 한솔 PCS 사장이 됐다. 초창기 휴대전화인 PCS 사업자로 한솔정보통신이 선정되면서 PCS의 대표주자로 주가를 올렸다.
2006년 서울대와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선정됐다. 대한전자공학회 기술상, 한국통신학회 정보통신대상을 받았다. 1997년 '최고령 번지점프'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저서 '기술보급을 후손에게', '고목에 피는 꽃'을 남겼다.
유족은 정지원(전 중앙M&B 근무)·정인상(동국 근무)·정인욱(삼성전자 근무)씨와 사위 채인택(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일산백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25일 오전 5시30분, 장지 분당 메모리얼파크. ☎ 031-902-4444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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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