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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가 가치 영역 해외로 이전…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산업구조 만들어야"
K-바이오 중대 분기점, 기술수출 넘어 글로벌 시장 주도권 가지려면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서는 수조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 소식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K-바이오 붐'이라는 이름 아래 시장과 언론은 이를 한국 제약산업 도약의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신약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던 우리 산업이 세계 제약사들과 기술 계약을 체결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은 놀랄 만한 진전이다. 그러나 정책적 관점에서 보면 이 성과를 무조건적인 성공으로만 평가하기에는 불편한 질문들이 남는다.
현재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기술수출 구조는 대부분 전임상 또는 초기 임상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이 단계는 과학적 가능성을 검증하는 구간이지만, 상업적 가치가 폭발하는 시점은 후기 임상과 글로벌 판매 단계다. 문제는 이 핵심 가치 창출 구간을 국내 기업이 아니라 해외 제약사가 가져간다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국내 산업에는 연구 역량은 축적되지만, 시장 지배력과 글로벌 브랜드 자산은 남지 않는다. 기술수출 계약이 많아질수록 산업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부가가치 영역이 지속적으로 해외로 이전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한국 기술을 도입하는 이유 역시 단순한 기술 협력만은 아니다. 물론 우리 기술이 기존 파이프라인보다 우수하거나 개발 일정상 유리한 경우도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경쟁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시장 진입 자체를 차단하려는 숨은 전략도 존재한다. 소규모 선급금 계약 후 개발을 지연시키고, 일정 기간이 지나 계약을 해지해 기술을 반환하는 방식은 산업적으로 매우 치명적이다. 기술은 사장되고, 국내 기업은 시장 타이밍을 영구히 잃게 된다. 이러한 사례가 반복된다는 사실은 기술수출 구조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그러나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계약서의 숫자가 아니라 시장에서의 존재감으로 결정된다. 진정한 글로벌 제약사는 기술을 파는 기업이 아니라 신약을 직접 판매하는 기업이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은 라이선스 아웃(기술 이전) 단계에서 성과를 멈춰왔다. 앞으로는 후기 임상 주도, 지역별 판매권 파트너십, 공동 상업화 모델 구축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 진입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이는 단기간에 성과를 보여주지 못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산업 체질을 바꾸는 유일한 경로다.
이를 위해 정책의 방향도 조정될 필요가 있다. 공공 재원이 투입된 핵심 바이오 기술에 대해서는 전략 기술 관리 체계를 도입하고, 해외 이전 시 산업적 영향 평가를 의무화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후기 임상 단계의 고위험 투자를 분담할 수 있는 정책 금융과 보험 시스템도 구축돼야 한다. 또한 국내 기업 간 기술이전과 공동 개발을 촉진할 수 있도록 기술가치 평가 인프라와 협력 플랫폼을 고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해외 판매권 기반 진출을 지원하는 정부 차원의 상업화 지원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지금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다. 기술수출을 통해 가능성은 입증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기술을 끝까지 책임지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산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계약 규모가 아닌 글로벌 시장 점유율, 기술 매각이 아닌 신약 상업화 성과가 성공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기술을 파는 나라에서 신약을 파는 나라로의 전환은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이 전환을 미룰수록 산업 주도권은 더욱 멀어진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진정한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창일지도 모른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하재영 ㈜아리바이오 연구/사업개발 총괄부사장
서울대 약대/대학원 졸업, 약학 학사/석사. 스위스 노바티스 동유럽 지역 총괄헤드·스위스 적십자사 중앙연구소 이사·스위스 마베나사 부사장·영국 옥스브리지파마 CEO 역임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