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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스라엘의 갑작스러운 이란 공격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이 한 달간 지속되면서 중국의 손익 계산이 복잡해지고 있다.
내수 침체와 경제 둔화에 대응하느라 갈 길이 바쁜 상황에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응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관세·대만 문제 등 현안을 놓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열 예정이던 정상회담도 '휴전 이후'로 미뤄졌다.
다만 중국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는 '중립' 위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란 전쟁 발발은 경제 둔화 국면에서 '분위기 전환'을 꾀하고 있는 중국에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중국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내수 부진과 산업 과잉 생산·출혈 경쟁, 부동산시장 침체, 높은 청년실업률 등 경제를 옭아매는 갖가지 문제 속에 올해 35년 만에 가장 낮은 '4.5∼5%'의 성장률 목표를 설정했다.
성장세가 꺾인다는 안팎의 불안 심리를 불식하기 위해 연초부터 무역액을 크게 늘리고 정부 재정 지출 강도를 높이는 등 '경제 실적' 쌓기에 박차를 가하던 중 전쟁이 시작됐다.
내수 진작과 국내 투자에 집중해야 할 재원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중동 산유국의 잇따른 피해로 인한 에너지 위기 대처에 쓰이게 됐다.
중국 공식 통계에 따르면 중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오는 석유는 총수입량의 33%를 차지하고, 이는 전국 총소비량의 22%에 해당한다.
러시아 등으로의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와 자동차 전기화, 대체에너지 개발을 장기간 추진해왔음에도 국제 유가 불안은 피하기 어려웠다. 대규모 산업 현장이나 발전이 더딘 지방의 화석연료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이후에도 중국만은 원유·가스 수급에 지장이 없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12일 중국 선주가 소유한 컨테이너선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포탄 파편에 맞는 등 중국 선박도 무탈하지는 못했다.
결국 중국은 24일 올해 다섯 번째 휘발유·경유 소매가 인상을 발표하며 시장가에 따른 인상 폭의 절반만을 적용하는 '임시 조절 조치'를 가동했다.
중국 정부가 유가 조절 조치로 직접 개입한 것은 현행 유가 메커니즘이 도입된 2013년 이후 처음이다. 현 상황을 '비상'으로 인식한 것이다.
유가 급등이 가뜩이나 위축된 내수와 수익성 압박에 직면한 산업계에 충격을 주는 것을 경감하려는 시도지만, 어느 정도의 '내상'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약 19만7천원), 국내 정유 가격이 L당 10위안(약 2천200원)을 넘어서면 소매가 통제와 공급 보조금 지급 등으로 대응하는 카드도 공식화했다.
다만 한국·일본 등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비해 사정이 다소 낫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경제가 고(高)유가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전쟁이 장기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국내 매체에 곧잘 등장한다.
◇ '휴전 이후'로 미뤄진 미중 정상회담…"시간 벌었다" 평가도
미국이 전쟁 당사자가 되면서 원래는 이르면 이달 말로 예정됐던 미중 정상회담은 미뤄졌다.
당초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말에서 내달 초 사이에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대좌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이 호르무즈 해협 호위 요청에 응답하지 않을 경우 정상회담을 연기할 수 있다고 했고, 그 이튿날에는 이란 전쟁 때문에 미국에 있어야 해 중국에 정상회담 연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만난 19일에는 미중 회담이 '한 달 반 정도' 연기됐다고 언급, 시간표는 5월 중순까지 늦춰졌다.
지난해만 해도 중국을 겨냥해 초고율 관세와 무역 제재, 거친 언사로 공격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뒷전'으로 미뤄둔 모양새다.
중국이 정상회담 연기에 별다른 공식 반응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미국에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미중 정상회담 연기는 단순히 중동 전쟁 때문만이 아니라 최근 수개월 동안 미중 사이에 쌓인 불만과 트럼프 행정부의 주의 분산 등이 얽힌 문제라고 설명한 바 있다.
미중은 작년 10월 부산 정상회담에서 관세와 희토류, 펜타닐 등 주요 의제에 대한 1년의 시한을 두고 '휴전' 합의를 했다. 하지만 양국 실무 그룹의 소통이 올해 1월부터 뜸해졌고, 중국 제안에 미국이 응답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은 시간을 벌고 국내 일정과의 충돌도 피하기 위해 4월 말에서 5월 초를 선호했지만 '방중' 자체에 의미를 둔 미국은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의 일정을 고수하는 등 이견 존재했고, 회담 내용에 관해서도 세부 조율이 부족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중 정상회담이 자칫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날 수 있었는데, 이번 연기로 인해 까다로운 이슈를 놓고 차분하게 사전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중국 방문이 성사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초점은 무역 문제와 희토류 수출 통제,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공산품·에너지 구매 문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과 중동 문제에 대한 중국의 지지 등이 될 것이고, 시 주석은 '핵심 이익'인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 관세 문제, 첨단 기술 수출 통제 등에서 미국의 양보를 기대할 것으로 보인다. 모두 단칼에 해결하기 힘든 복잡한 쟁점이다.
천치 칭화대 교수는 중국이 이란 전쟁을 '트럼프가 만든 문제'로 보고 있고, 미중 관계 안정화라는 최우선 과제가 이 문제에 의해 가려지거나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회담 연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이란은 군사 보호 필요한 동맹 아냐"…SNS선 美 비판 물결
이번 전쟁에서 중국은 대외적으로 '이란 편'이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하며 거리를 두고 있다.
미국의 제재에 직면한 이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란산 원유 대부분을 수입해왔고, 국제 무대에서도 이란에 힘을 실어줬지만,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중립'과 '중재자'를 자처하는 모양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지난 5일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했고,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의 드론 전술 제공과 중국의 고체 미사일 연료용 전구체 공급 정황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중국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최근 중동 지역 및 유럽 국가들과 소통할 때마다 '미국·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을 비판하면서도 이란이 관련된 '무고한 민간인 살상'을 함께 거론하면서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
중국공산당 베이징시위원회 기관지 북경일보는 19일 논평에서 일부 서방 매체들이 '중국은 동맹(이란)이 죽어가는데도 구하지 않는다'라거나 '중국이야말로 막후의 승자'라는 평가가 나온다며 모두 부인했다.
논평은 "중국이 언제 이란을 군사적 보호가 필요한 동맹으로 여겼다는 말인가. 중국은 중동에서 일관되게 군사 동맹을 맺지 않았고, 대리전을 치르지 않았으며, 진영 대결도 벌이지 않았다"며 "타국의 관계를 '네가 나를 도와 싸우면 내가 책임진다'는 동맹 논리에 덧씌우는 것은 그 자체로 중국 외교에 대한 오독(誤讀)"이라고 주장했다.
절제된 공식 입장과 달리, 중국 소셜미디어에선 평소보다 미국 비판과 조롱이 한층 늘어난 상황이다.
폭격당한 이란을 동정하거나 미국대사관 계정을 찾아가 분노를 쏟아내는 중국 네티즌이 적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희화화한 이미지가 제작·유포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소셜미디어가 당국에 의해 통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이 '미국의 정치적 쇠퇴' 메시지가 유포되는 것을 굳이 막지 않으면서 자기 정당성을 축적하려 하고 있다는 해석도 힘을 얻는다.
xing@yna.co.kr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