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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변 살인' 누명 피해자, 빗방울에도 물고문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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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 씨 사진 촬영]
[최인철 씨 사진 촬영]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목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그날이 떠오릅니다."

1991년 '낙동강변 살인사건' 누명 피해자 2명 중 1명인 최인철(63) 씨는 35년이 지난 아직도 빗방울이 두렵다.

최씨는 가랑비가 머리카락에 맺혀 목덜미로 떨어지면 물고문당했던 그해 11월 부산 사하경찰서 별관에 있는 것 같다.

그는 "경찰들이 내가 잠을 못 자게 하려고 목덜미에 물을 한 방울씩 떨어지게 하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비가 내리면 비옷이나 우산이 반드시 있어야 외출할 수 있고, 샤워기로 씻을 때도 절대로 물이 목에 곧바로 닿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회를 먹을 때면 와사비를 옆에 두지 않는다. 몸이 냄새조차 거부한다.

낙동강에서 물고기를 잡던 최씨의 부친은 그가 어릴 적부터 '비늘 있는 고기는 고추장에, 비늘 없는 고기는 와사비에'라는 말을 자주 했다.

부친의 영향에 한때 배를 탔던 경험까지 더해 최씨는 소고기보다 회를 더 좋아했다.

그런 회와 함께 먹던 와사비가 소름끼치는 맛을 안겨준 장소는 엉뚱하게도 사하경찰서 별관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목과 코로 들어오던 물에서 평소 익숙하던 알싸한 맛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경찰관들이 물고문의 고통을 더하려고 물에 와사비를 푼 것으로 의심한다.

최씨는 "물고문 때 물고 있던 수건을 경찰관이 갑자기 당겨 부러진 이도, 그전에 다쳤던 팔에 박혀있던 철심과 나사가 튀어나왔던 고통도 시간이 흐르니 무감각해졌다"면서도 "비와 와사비처럼, 그날의 기억이 겹치는 순간이면 아직도 경찰서에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씨와 함께 체포돼 같은 비슷한 고문을 당했던 장동익(66) 씨 역시 '마음의 상처' 때문에 여진히 힘들어 한다.

그는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부기가 빠지고 흉터도 희미해지지만,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내 빈자리를 채우는 게 가장 힘들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구속될 때 두 살배기였던 딸이 출소 이후 20대 성인이 돼 있었다"며 "아빠의 사랑을 못 먹고 자란 딸에게 미안하고, 마음의 벽이 없어지지 않은 것 같아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됐다"고 말했다.

장씨와 최씨는 1991년 11월 8일 오후 낙동강변 살인사건 용의자로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았다.

최씨는 사흘 뒤인 11일 범행을 자백하는 자술서를 썼다. 장씨는 그 사흘 뒤인 같은 달 14일 자술서를 썼다.

두 사람은 검찰 수사 때부터 경찰로부터 고문을 당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부산지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13년 모범수로 출소했다.

억울한 옥살이 기간은 21년 5개월 20일, 날수로는 7천841일이었다.

재심 재판부는 2021년 2월 4일 두 사람이 당한 고문 등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람은 최근 재심 재판 과정에서 고문 사실을 모른다고 진술했던 당시 경찰관 5명을 위증 혐의로 부산경찰청에 고소했다.

pitbul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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