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가장 오래된 동반자 가운데 하나다.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부터 현대의 올림픽 경기장에 이르기까지 말은 물자를 운반하고 농경을 돕고 전쟁의 현장을 누비며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해 왔다. 오늘날에도 스포츠와 레저, 농업, 관광, 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말의 가치를 기리기 위해 유엔 총회는 2025년 6월 3일 결의안을 채택하고 매년 7월 11일을 '세계 말의 날'로 지정했다. 결의안은 각국 정부와 교육기관, 기업, 시민사회가 말의 역사적·사회적 역할을 기념하고 현대 사회에서 말이 직면한 과제에도 함께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인류와 말의 인연은 약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말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의 말은 약 4000여 년 전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처음 사람과 함께하기 시작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이후 말은 사람과 물자를 운반하고 밭을 갈며 소식을 전하는 등 자동차와 기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 문명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했다.
말은 각 지역의 문화에도 깊이 뿌리내렸다. 몽골에서는 삶과 문화를 상징하는 존재였고, 아랍에서는 세계 경주마의 뿌리가 된 아라비안 품종이 탄생했다. 영국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서러브레드가 만들어지며 경마 문화가 발전했다. 우리나라 역시 고구려 고분벽화와 제주 조랑말, 조선시대 역참 제도 등 말과 함께한 역사를 이어왔다.
말의 존재감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말은 약 6080만 마리에 달한다. 미국에서는 약 241만 마리의 말과 포니가 사육되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는 약 700만 마리의 말이 사육되고 말 산업을 통해 약 80만 개의 일자리가 유지되고 있다.
말과 당나귀, 노새 등 사역동물은 개발도상국에서도 중요한 생계 기반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와 FAO에 따르면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에서는 약 1억1200만 마리의 사역동물이 약 6억 명의 생계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말이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계화와 도시화로 말의 역할이 줄면서 방치되거나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열악한 사육 환경과 과중한 노동 문제가 이어지고 있으며, 기후변화 역시 새로운 부담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이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이상 높아진 첫해라고 발표했으며, 이는 말의 열 스트레스와 건강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 스포츠계는 무더위 대응과 동물복지 기준을 강화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한국마사회를 비롯한 관계 기관들이 은퇴 경주마 복지와 말 보호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오는 11일 렛츠런파크 서울 8경주에서는 '세계 말의 날 기념경주'도 열린다.
'세계 말의 날'은 말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류와 말이 함께해 온 오랜 동반자 관계를 되새기고, 농업과 산업, 스포츠, 관광, 치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어지는 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는 날이다. 앞으로도 사람과 말이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자는 국제사회의 메시지가 담긴 기념일이기도 하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