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장종호 기자] 겉으로는 직장생활과 대인관계 등 일상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내면에서는 우울감, 무기력, 공허감, 흥미 저하 등을 지속적으로 겪는 상태를 흔히 '고기능 우울증'이라고 부른다. 정식 의학적 진단명은 아니지만, 실제 진료에서는 주요우울장애나 지속성 우울장애 등으로 진단될 수 있다. 업무와 일상을 수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본인과 주변 모두 증상을 알아차리기 어렵고, 단순한 피로나 성격 문제로 여기며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고기능 우울증'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사용하는 정식 진단명은 아니다. 출근과 업무, 대인관계 등 겉으로 드러나는 일상생활은 비교적 원활하게 유지하면서도 내면에서는 우울감과 무기력, 공허감 등을 겪는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비공식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고기능 우울증이라는 별도의 질환이 있다기보다, 우울 증상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한 용어에 가깝다.
실제 진료에서는 '일을 할 수 있는지'만으로 우울증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 우울감이나 흥미 저하가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 수면과 식욕, 에너지, 집중력 등에 변화가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평가 결과에 따라 주요 우울장애나 지속성 우울장애 등으로 진단될 수 있으며, 증상의 원인이 다른 신체질환이나 약물 등에 있지는 않은지도 함께 확인한다. 주요 우울장애는 우울감 또는 흥미 저하를 비롯한 증상이 대체로 2주 이상 이어지는 경우, 지속성 우울장애는 비교적 만성적인 우울 증상이 성인에서 2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 진단을 고려한다.
우울증의 핵심 증상은 단순히 기분이 가라앉는 것만이 아니다. 이전에 즐기던 활동에 흥미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흥미·쾌감 저하'가 나타날 수 있고, 쉽게 피로해지거나 집중력과 판단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오래 자는 수면 변화, 식욕과 체중의 변화, 이유 없는 초조함과 무기력 등도 대표적인 증상이다. 일부는 슬픔보다 짜증과 예민함, 반복되는 신체 통증을 먼저 호소하기도 한다.
이른바 고기능 우울 증상을 겪는 사람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책임감이나 익숙한 생활 습관에 의지해 업무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같은 일을 처리하는 데 이전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과도하게 몰아붙일 수 있다. 직장에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다가 퇴근 후에는 대화나 집안일조차 버겁게 느껴지고, 주말 내내 누워 있어도 회복되지 않는 양상이 반복되기도 한다.
특히 업무 성과가 유지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울 증상이 가볍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기능보다 그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번아웃과 우울증은 피로, 무기력, 집중력 저하 등 비슷한 증상을 보여 혼동하기 쉽다. 세계보건기구는 번아웃을 질환이 아닌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와 관련된 '직업적 현상'으로 분류한다.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 업무에 대한 냉소나 심리적 거리감, 직업적 효능감 저하가 주요 특징이며, 증상이 주로 직장이나 특정 업무 상황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반면 우울증은 직장을 벗어난 뒤에도 증상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휴가를 가거나 충분히 쉬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고, 취미와 가족관계 등 생활 전반에서 흥미와 즐거움이 줄어들 수 있다.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거나 과도한 죄책감을 느끼고, 심한 경우 죽음이나 자해에 관한 생각이 동반되기도 한다. 우울한 감정은 일시적인 슬픔과 달리 지속적이고 무겁게 느껴지며, 즐거운 일이 생겨도 쉽게 해소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다만 번아웃과 우울증은 명확히 나뉘기보다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증상이 업무 영역에만 국한되는지, 쉬었을 때 회복되는지, 일상 전반의 흥미와 자기평가까지 달라졌는지를 살펴보되 스스로 진단하기보다는 전문의의 평가를 받는 것이 정확하다.
우울증은 혈액검사나 뇌 영상검사 하나만으로 확진하는 질환이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우울감과 흥미 저하, 수면·식욕 변화, 피로감, 집중력 저하 등 증상의 종류와 지속 기간,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면담을 통해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필요에 따라 갑상선질환이나 빈혈, 수면장애, 복용 중인 약물 등 우울 증상과 비슷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원인도 함께 살핀다.
치료는 증상의 정도와 지속 기간,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상담과 인지행동치료 등 정신치료를 시행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항우울제를 비롯한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규칙적인 수면과 운동, 식사 등 생활 습관을 관리하는 것도 회복에 도움이 되지만, 증상이 지속된다면 생활 습관 개선만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원석 교수는 "겉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울 증상이 가볍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우울감이나 무기력, 흥미 저하가 2주 이상 지속되거나 충분히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다면 혼자 버티기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