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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걸을 수 조차 없는 다리를 이끌고 또 경기장에 나왔다. 목소리도 낼 수 없다. 굳은 표정으로 코트를 바라보는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하지만 역전이 이뤄지고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마다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병마의 그늘을 벗어던질 수 있는 이 순간이 그에게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루게릭병의 원래 명칭은 '근육위축가쪽경화증'이다. 미국 메이저리그(MLS) 뉴욕 양키스의 4번 타자였던 루 게릭이 이 병에 걸리며 통용됐다. 이 질환은 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원이 손상을 입으면서 발생한다. 전신 쇠약 및 위축으로 시작해 호흡근 마비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발병 원인은 여러가지 설이 존재하나 명확하게 규명된 것이 없다. 확실하게 효과가 입증된 치료법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발병 환자 중 10%는 증세 호전으로 10년 이상 생존하는 경우도 있다. 40년 넘게 생존 중인 세계적 석학 스티븐 호킹 박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평균 생존기간이 평균 3~4년으로 알려져 있다. 코트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감독이 안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병이다. 김 감독은 2010년 11월 루게릭병 판정을 받았다.
현역 시절 임오경(현 서울시청 감독) 등과 함께 코트를 누볐던 실력파였다. 하지만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1994년 지도자로 전향했다. 서울 배봉초와 황지정보산업고를 이끌고 숱하게 우승을 맛봤다. 2005년 장성초로 부임한 뒤에도 2008년과 2010년 소년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현역시절 못다 핀 열정은 지도자로 전향하면서 만개하는 듯 했다. 이런 와중에 찾아온 불행은 청천벽력이었다. "처음에는 병명도 잘 몰랐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상심도 컸다." 고심 끝에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기로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순간이라면 핸드볼을 하다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핸드볼은 전교생이 50여명에 불과한 광산촌마을 학교의 유일한 희망과도 같다. 꿈나무들의 자양분이 되자고 결심했다. 담당의도 가능한 선까지 지도자 생활을 하라고 조언했다. 장성초는 올해 종별선수권 우승에 이어 안방에서 열린 태백산기까지 차지하면서 남자 초등부 최강팀의 면모를 이어갔다. 소년체전에서 3위에 그친 것이 못내 아쉽지만, 김 감독은 행복하다. "아이들하고 함께 코트에 서는 순간만큼은 아프지 않다. 나도 모르게 기운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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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