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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박태환은 4분33초43를 끊었다. 자유형 400m에서 첫 우승을 했던 열한살 때의 기록이다.
박태환 아버지의 X-파일
박태환의 모든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아버지는 아들에 관한한 전문가다. 종목별 레이스 경쟁자의 최근 동향 및 근황을 샅샅이 꿰뚫고 있었다. 박태환의 모든 경기 동영상은 물론 마이클 펠프스, 라이언 록티, 야닉 아넬 등 아들과 경쟁할 톱클래스 선수들의 자료를 직접 수집해 연구한다.
박태환의 첫 공식 대회는 8세 때인 1997년 6월 17일 동아-스피도 전국마스터즈대회다. 접영 100m에서 1분26초08, 개인혼영 200m에서 3분07초29의 대회신기록을 세웠다. "이때 정말 귀여웠지. 접영도 곧잘 했었어."그 때의 아들을 떠올리는 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두달 후인 포카리 전국마스터즈대회 자유형 200m, 개인혼영 200m에서도 대회신으로 2관왕에 올랐다. 장차 대한민국을 뒤흔들 '수영천재'의 탄생이었다. 아버지는 1999년 전국소년체전 접영 50m 실격 기록을 가리켰다. 아테네올림픽 실격과 함께 박태환 수영 인생에서 겪은 2번의 실격 중 하나다. "제주도에서 열린 대회인데, 노민상 감독도 나도 실격 당한 줄도 모르고 결선을 기다렸지 뭐야. 하하."
주종목인 자유형 400m에서 첫 우승의 기억은 11세이던 2000년이다. 해군참모총장배 전국수영대회에서 4분33초43의 대회신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0년 후 스물한살의 박태환이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세운 한국최고기록 3분41초53과는 1분 이상 차이가 난다. 15세때인 2004년 전국소년체전에서는 3분56초56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마의 4분벽'을 깼다. 1997년 이후 15년간 14개의 한국신기록과 11개의 아시아신기록을 작성했다.
아버지의 '깨알같은' 파일에선 위기에 강해지는 박태환의 승부사적 기질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부정출발로 실격한 후 동아수영대회(2005년 3월)에서 자신의 첫 한국신기록(3분50초37)을 작성했다. 2006년 8월 캐나다 빅토리아 범태평양선수권에선 3분45초72로 첫 아시아신기록을 썼다. 2009년 로마세계선수권 '쇼크' 이후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보란듯이 3관왕에 올랐다. 2개의 한국신기록과 1개의 아시아신기록을 남겼다. 기록 종목에서 15년간 끝없이 성장해온 아들에게 이제 남은 건 세계신기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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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울산에서 열린 동아수영대회에서 박태환은 "부모님은 제 경기 보는 것 자체를 행복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라고 했다.아들의 수영을 지켜보는 것은 부모에게 더없는 기쁨이다. 1999년 전국소년체전, 유방암 투병중이던 어머니 유성미씨는 항암치료 중 제주도까지 날아갔다. 흉하게 빠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눌러쓴 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한창 상승세였기 때문에 엄마가 없어선 안될 것 같았다"고 했다.
박태환의 어머니는 밝고 씩씩하다. 아들을 수영장으로 인도한 것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영선수의 길을 열어준 것도 '강단 있는' 어머니였다. 그렇게 씩씩한 어머니가 눈물을 쏟은 것은 오로지 아들 때문이었다. 한때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며 빠듯한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었다. 먹는 것, 입는 것을 줄일 지언정 고가의 수영 레슨은 포기한 적이 없다. 어느날 다니던 수영장에서 영문도 모른 채 "아이를 데려가라"고 했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우리 아기를 어떡하냐"며 대성통곡했다. '엄마의 눈물'은 통했다. 다음날도 아무일 없이 '소년 박태환'은 수영장에서 물살을 갈랐다.
세계선수권, 올림픽 등 빅매치 기간에 가족들은 기꺼이 '그림자'가 된다. 경기를 앞두고 예민해져 있을 박태환이 경기에만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SK스포츠단 전담팀에 모든 것을 맡긴다. 만나거나 먼저 전화도 하지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관중석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죽인 채 경기를 지켜본다. 꼭 필요한 일은 박태환이 가장 믿고 따르는 누나 박인미씨를 통해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경기가 끝나면 그제서야 그리운 아들을 만날 수 있다. 익숙해진 일상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아버지는 마음이 답답할 때면 집 근처 대모산, 구룡산에 올랐다. 정상에 서면 습관처럼 아들 생각이 난다. "동네 산 하나 오르는 데도 이렇게 다리가 아프고 숨이 막히는데… . 단 0.01초를 줄이기 위해 매일매일 심장이 터질 듯한, 근육이 터져나갈 듯한 고통을 수백번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아버지는 아들이 늘 안쓰럽다. 수영을 그만 시키고 싶은 적도 많았다. 눈만 뜨면 물살을 가르는 생활 대신 그 또래 아들들처럼 공부하고 연애하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란 적도 있다. 그런데 아들은 '세계신기록'의 꿈을 드러낸다. 자신의 수영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가족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부모는 하루 1만5000m, 무수히 많은 날들을 외로이 물속에서 버텨온 아들이 런던에서 부디 꿈을 이루길 소망한다. "그 어느 때보다 과정이 좋았다. 최선을 다했다. 이제 결과는 하늘에 맡길 뿐이다." 2012년 7월 29일 새벽 3시49분, 박태환의 도전이 또다시 시작된다. 늘 그랬듯이 가족들도 그 현장을 함께 한다 . 런던=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