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노메달' 왕기춘, 종합대회 징크스 깨지 못했다

기사입력 2012-07-31 00:25



4년으로는 악몽을 극복할 수 없었다.

4년전 왕기춘(24)은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8강전에서 갈비뼈를 다쳤다. 투혼을 발휘해 결승전까지 나갔다. 하지만 경기 시작 13초만에 무릎을 꿇었다. 시상식에서도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이후 왕기춘 꿈속에 나오는 메달은 무조건 은색이었다. 금메달은 구경도 못했다. 금메달은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목에 걸려있었다.

악몽은 징크스를 낳았다. 종합대회 부진 징크스였다. 세계선수권대회와 지역 대회에서는 최강이었다. 그런데 종합대회만 나가면 다리에 힘이 풀렸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은메달에 그쳤다. 악몽을 깨부수고 싶었다. 그런만큼 이번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은 절실했다. 매일 땀으로 도복을 적셨다.

조력자들도 몰려들었다.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언제나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와 친구, 동료들이 있었다. 인생의 멘토 이원희 용인대 교수가 가장 큰 힘이었다. 이원희는 3월 유도대표팀에 합류했다. 직함은 여자 대표팀 코치였다. 평소에는 여자 선수들에게 집중한다. 짬이 날 때 남자 선수들도 봐주었다. 오랜 시간 함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왕기춘에게 이원희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 왕기춘은 이 코치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에 따라 일상부터 훈련까지 확 뜯어고쳤다. 이원희가 즐겨했던 사이클 훈련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하체를 강화하고 밸런스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

사실 왕기춘은 이원희에게 마음의 빚이 컸다. 이원희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왕기춘은 이원희의 체급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이원희의 업적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원희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왕기춘은 훈련을 거듭했다.

땀의 힘은 빛났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1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마스터스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4월 열린 아시아선수권까지 제패했다.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런던올림픽 금메달은 떼논 당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또 다시 찾아온 부상 악령을 털어내지 못했다. 카자흐스탄의 리나트 이브라기모프와의 32강전에서 암바를 당해 오른쪽 팔 인대가 손상됐다. 16강전부터는 오른쪽 팔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 팔로 싸우게 된 왕기춘은 만수르 이사예프(러시아)와의 준결승전에서 왼쪽 팔마저 다쳤다. 힘을 넣기도 힘들었다. 주의 2개를 받은 왕기춘은 스코어를 잃었고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경기 종료 선언 후 왕기춘은 한동안 매트에 누워 하늘만 바라봤다. 대기실로 돌아가는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 마지막 투혼을 바랐지만 이마저도 없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프랑스의 우고 르그랑(세계랭킹 8위)을 상대로 연장전(골든 스코어)에서 절반 패해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4년을 기다린 복수에 다시 실패한 왕기춘. 불운의 아이콘을 날리기 위해서는 다시 4년을 기다려야 하는 '도전자'의 처지가 됐다.
런던=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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