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따면 뭐하나", 선수들이 뿔났다

기사입력 2013-01-24 08:10


앞줄 왼쪽부터 박종훈 관동대 교수 조성동 체조대표팀 총감독 박영옥 체육과학연구원 박사 이에리사 의원 양학선 고예닮 장미란 박성현 뒤줄 왼쪽부터 장영술 양궁대표팀 총감독 손광현 동서대 교수 정희돈 한국체육기자연맹 사무총장 박주한 서울여대 교수 박필순 대한체육회 사무차장

◇22일 체육발전 유공자 서훈기준 개선방안 토?蒔맙【 런던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이 토론내용이 담긴 책자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 학선이는 청룡장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점수 계산 좀 해주세요." 대한민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리스트인 양학선을 지도한 조성동 남자체조대표팀 총감독이 22일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제자 양학선(앞줄 왼쪽 끝)을 앞에 두고 훈장 서품 기준 상향 조정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양학선 선수는 언제 청룡장을 받을 수 있나요? 계산 좀 해주세요."

'태릉 최고참' 조성동 체조 총감독의 질문에는 뼈가 있었다. "택시 타고 태릉선수촌 들어가다보면 국가대표 감독이 대단한 줄 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1급 지도자는 월 330만원, 2급 지도자는 220만원을 받는다. 금메달 따면 무슨 대단한 혜택이 있나. 이 마당에 명예의 상징인 훈장 서훈까지 줄인다는 건 말이 안된다. 도리어 확대해야 한다." 장영술 양궁 총감독은 열악한 엘리트 체육의 현실에 조근조근한 말투로 울분을 터뜨렸다.

22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체육발전 유공자 서훈기준 개선방안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정부는 체육인들의 훈장 포장 기준 상향조정을 검토중이다. 일례로 가장 높은 1등급 훈장인 청룡장 수상기준인 1000점은 1500점으로 상향조정이 예상된다.

'사라예보의 기적'을 일군 탁구 영웅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 열기는 전에 없이 뜨거웠다. 양학선 장미란 박성현 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을 비롯해 체조대표팀, 양궁대표팀 등 묵묵히 땀방울을 흘리던 태릉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침묵했던 스포츠인들이 꾹 눌러왔던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송강영 동서대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연구의뢰를 받아 이 사안을 집중연구중인 박영옥 체육과학연구원 박사가 발제에 나섰다. 박주한 서울여대 교수, 정희돈 한국체육기자연맹 사무총장, 장영술 국가대표 양궁 총감독, 박필순 대한체육회 사무차장, 박종훈 관동대 교수등이 토론에 참가했다.

발제자인 박 박사는 "훈장은 명예성에 기초해 권위성 희소성 공정성 보상성의 원칙하에 빛이 난다"고 전제했다. "문화 부문의 경우 1등급인 금관훈장을 받는 사람은 지난 2008년 이후 단 2명에 불과했다. 체육훈장은 상대적으로 너무 많다. 지난해 청룡장 수상 대상자가 20명 가까이 된다"며 희소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메달리스트 등 국제대회 성적, 포인트에만 집중되는 서훈 요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엘리트 선수의 경기력에 따른 성과뿐 아니라 프로 스포츠, 스포츠과학 등으로 '공적'의 외연을 넓히는 방안을 제안했다. 결과뿐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운동학적 수행이 가지는 직 간접적 사회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 박사의 발제에 대한 현장의 반발은 거셌다. 장 감독은 "서훈 대상이 많으니 줄이자고 하는데, 세계 5위에 들다보니 서훈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서훈자의 나이가 적다고 하는데, 운동선수가 젊지 늙어서 받는 사람이 어딨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올림픽 금메달 포인트가 500점이다. 새로운 청룡장 기준인 1500점을 채우려면 12년동안 올림픽 금메달 3개를 따야 훈장을 받을 수 있다. 선수들은 하루에 4만원 받으며, 1년 365일 자신과 국가의 명예를 위해 뛴다. 결국 사기의 문제다.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도 모자랄 판에 서훈기준을 높인다니 어안이 벙벙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올림픽 체조 동메달리스트 출신의 학자 박종훈 관동대 교수 역시 강한 어조로 반대 의견을 내놨다. "런던올림픽 직전 모선수의 말처럼 태릉의 선수들은 죽기살기가 아니라 죽기로 운동한다. 이들에게 더 큰 보상을 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공을 깎아내리려 하는 정책이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2등급 은관훈장을 받았다. 4년에 한번 있는 올림픽에서 양학선이 체조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따냈다. 그 금메달의 노력과 감동이 황금사자상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1976년 첫 청룡장을 수상했던 양정모 선수의 금메달이 2012년 양학선의 메달과 색깔이 다르냐. 노력의 차이가 있는가. 올림픽(500점), 세계선수권(200점), 아시안게임(150점)에서 금메달을 딴 양학선 선수는 현재 포인트로 3등급 거상장밖에 받지 못한다.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해서 올림픽의 의미와 금메달의 가치가 퇴색된 것은 아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희소성' 논란에 대해서도 쐐기를 박았다. "2011년 교원 6274명, 공무원 3270명이 훈장을 받았다. 왜 체육인들의 피땀어린 훈장에만 희소성의 기준을 적용하는지 모르겠다. 형평성, 공정성의 원칙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토론회 말미에 바르셀로나 여자유도 금메달리스트이자 현 여자유도 대표팀 코치인 김미정이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나는 여자유도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청룡장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개정될 기준으로는 대상자가 될 수 없다"고 전제했다. "올림픽 전에는 메달만 따면 다 좋아질 것처럼, 늘 뭐든 다해줄 것처럼 한다. 끝나면 달라진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직후 1993년 연금 개정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금메달 13개 세계 5위, 좋은 성적이 나면 되레 깎으려는 것 같다. 지금도 태릉에 있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연금문제만 이야기하면 화를 낸다. 다 분하고 원통해 한다. '니네들 돈 때문에 운동했냐'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무시하며 넘어가는 것에 우리는 분노한다. 훈장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희소성을 말하는데, 올림픽 금메달은 4년에 한번, 10명 이내다. 누가 그 가치를 함부로 평가하고 희소성을 논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청룡장을 받은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훈장, 집에만 걸어놓으면 뭐하냐고 하는데, 내겐 선수로서 최소한의 명예이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 김미정의 논리정연한 말에 객석에 앉은 선수들이 박수로 호응했다. 뜨겁게 공감했다. 3시간여의 토론회 내내 선수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조용히 운동에만 몰입하며, 순응했던 선수들이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냈다.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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