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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파리세계탁구선수권은 '깎신' 주세혁(33·삼성생명·세계랭킹 13위)에게도, 탁구팬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대회다. 22세의 신예, 그것도 수비전형 선수가 녹색테이블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난공불락' 중국, 유럽세를 줄줄이 물리치고 개인단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3년 5월, 10년만에 파리에서 세계선수권이 다시 열린다. 유럽 탁구팬들은 32세의 독보적인 수비수 주세혁을 여전히 사랑한다. 수비전형으로 10년 넘게 세계 톱10을 유지해온 선수는 주세혁이 유일하다. 발닿는 곳마다 사인 공세가 뜨겁다.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유럽 팬들과 동료 선수들의 이메일이 답지했다. "이번 파리세계선수권 참가할 거죠?"
#'36세의 맏형' 오상은(KDB대우증권·세계랭킹 17위)은 런던올림픽에서 주세혁 유승민과 함께 단체전 은메달의 쾌거를 일궜다. 30대 베테랑 형님들의 투혼과 선전에 국민들은 환호했다. 오상은은 파리세계선수권을 자신의 은퇴 무대 삼았다. 런던올림픽 이후 소속팀에서 꾸준히 몸을 만들어왔다. 연말 탁구최강전 단식에서 우승했고,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에 베테랑 삼총사 중 유일하게 출전했다. 15세나 어린 '한솥밥 후배' 정영식(KDB대우증권·세계랭킹 44위)과 결승에서 맞붙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끝에 아쉽게 패했다. 후배를 껴안으며 진심어린 축하를 건네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둘째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의 의지다. 오상은은 "세계선수권을 마지막 무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협회에서 준비하라고 해서 몸을 만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가지 말라는 분위기다. 후배 앞길 막는 욕심많은 선배가 되고 싶진 않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주세혁은 "런던올림픽 이후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일을 내가 먼저 고민했다"고 했다. "처음엔 좀 섭섭했지만, 분위기도 그렇고, 무릎 상태도 썩 좋지 않아 파리에는 안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15년 세계선수권 개인전은 꼭 나가고 싶다"고 했다. "은퇴는 절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한국탁구의 자존심을 지켜온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졸지에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자 한국탁구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로 전락했다. 한국탁구를 위해 젊음을 바친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방식은 안된다.
셋째 영웅을 만들어내고 존중해주는 '문화'와 '가치'는 탁구인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수많은 탁구스타 중 팬들의 축복속에 은퇴한 행복한 선수는 현정화 김택수 등 손꼽을 정도다. 경기인 출신이 대한체육회장이 되고,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되는 시대다. 평생 한국탁구를 위해 헌신해온 '레전드' 후배들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이젠 만들어 줄 때가 됐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으로 태릉에 들어온 오상은은 20년 넘게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뛰었다. 40세 넘은 유럽 에이스들의 출전과 투혼에는 열광하면서 정작 우리가 가진 소중한 자산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부분은 안타깝다. 오상은, 주세혁은 1990년대 유럽탁구부터 2013년의 중국탁구까지 몸으로 부딪히며 익혀온 이들이다. 이들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인정하고, 귀하게 써야 한다. 프로축구의 김병지(43·전남), 김한윤(39·성남)이 그러하듯 노장의 모범적인 선수생활과 철저한 자기관리는 차세대 선수들에게 롤모델이 된다. '철인'으로 칭송받는다. 매경기 이들의 파이팅은 스토리가 된다. 12명의 대표중 노장 한둘 있어 안될 법은 없다. 탁구선수의 정년을 늘리고, 선수로서 선택할 수 있는 미래의 폭을 넓히는 계기도 된다. 오상은 주세혁의 은퇴 경기뿐 아니라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승민(삼성생명), '런던올림픽에서 마지막 투혼을 불사른 여전사' 김경아(대한항공) 등 국가대표 은퇴를 결정한 선수들의 은퇴식 도 구체적으로 준비돼야 한다. 한국탁구의 미래를 키우는 일만큼 한국탁구의 과거를 지켜내는 일 역시 소중하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