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태릉선수촌에서 펼쳐진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발전, '요정' 손연재(19·연세대)를 보기 위해 국내 취재진 70여명이 몰려들었다. 최근 월드컵 3개 대회 연속 메달의 상승세를 입증하듯 깔끔한 연기를 선보였다. 예상대로 전종목을 휩쓸며 개인종합 1위(총점 69.850)에 올랐다. 태극마크를 달았다. 남은 3장의 태극마크를 놓고 8명의 주니어, 시니어 선수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구름 취재진이 손연재에게 몰려든 바로 그때, 포디움 한켠에선 그들만의 따뜻한 축하가 이어졌다. '맏언니' 김윤희(22·세종대4)가 2위, '막내' 김한솔(15·강원체중3)이 3위에 올랐다.
'22세 맏언니' 김윤희, 투혼의 2위
김윤희의 2위가 확정된 직후, 이덕분 세종대 명예교수 등 스승들이 일제히 애제자를 끌어안았다. "리본 연기가 정말 좋았어", "어쩜 나이 들수록 연기가 느니?"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윤희는 3년전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선배 이경화 신수지, 후배 손연재와 함께 출전했다. 역대 최강 '드림팀'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당시 졸업반이던 이경화가 가장 먼저 은퇴했고, 신수지도 이듬해 전국체전 이후 은퇴했다. 언니들이 일찌감치 은퇴하면서, 졸지에 '맏언니'가 됐다. 김윤희는 오히려 마음을 다잡았다. "이상하게 포기가 안된다"고 했다. "언니들을 보면 그냥 밀려서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3~4학년 되면 이런저런 상황에 치여서 그만두고…. 그래도 그냥 끝낼 수가 없어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불가리아 에이스' 실비아 미테바를 이야기했다. 기혼녀인 그녀는 최근 소피아월드컵에서 개인종합 2위에 올랐다. "27세 나이에도 건재하잖아요. 결혼도 했는데 정말 멋지죠." '더 오래, 더 잘하는 선수'로 남고 싶은, 나만의 목표가 생겼다.
이번 선발전을 앞두고 3년만에 다시 러시아를 찾았다. '절친 후배' 손연재가 있는 노보고르스크센터로 향했다. "연재를 가까이서 보고 배우고, 자극도 받으려고 일부러 노보고르스크로 갔어요. 부모님이 어렵게 밀어주시는 만큼 정말 열심히 했죠." 딸의 미래를 응원하는 '열혈' 부모님이 2000만원 가까운 비용을 지원했다. 이날 눈부신 레오타드 아래 김윤희의 양무릎은 두터운 테이핑으로 가려졌다. 지난해 오른쪽 무릎인대 수술을 했었다. 러시아 전훈 중 왼쪽 무릎 인대도 찢어졌다. 양 무릎 모두 성치않은 상태에서 투혼을 발휘했다. "내년까지 뛰려면 수술은 안돼요. 선수는 누구나 다 아파요. 그냥 테이핑하고 뛰면 돼요." 씩씩하게 웃었다. 모처럼 구름 취재진에 떨리진 않았을까. "어차피 모두 연재를 보러온 건데요 뭐, 신경 안써요." 연기에만 집중했다. 김연아의 테마로 유명한 '록산느의 탱고'가 김윤희의 리본 루틴이다. 파워풀하고 열정적인 연기로 16.100점을 받아냈다. 김윤희는 내년 2월 졸업한다. 인천아시안게임 출전이 꿈이다. 국내 리듬체조계에 실업팀은 전무하다. 진로는 안갯속이지만, 꿈은 또렷하다.
'15세 막내' 김한솔, 발칙한 3위
9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성적순으로 손연재 김윤희 김한솔 이다애(19·세종대), 4명의 국가대표가 선발됐다. 대학생 언니들 틈새로 중학생 김한솔이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김윤희와 인터뷰 중 '막내' 김한솔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윤희언니, 같이 사진 찍어요."
'포스트 손연재'로 손꼽히는 김한솔은 지난 2월 모스크바그랑프리 주니어대회에서 개인종합 10위에 올랐다. 러시아, 동구권 유망주들이 대거 나선 대회에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대한체조협회가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을 겨냥해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는 차세대 최고 유망주다. 초등학교 5학년때 키르키즈스탄, 우크라이나에서 유학했다. '조기 유학파'다운 탄탄한 기본기에, 유연성이 뛰어나고 발끝과 정확한 동작이 인상적인 선수로 평가받는다.
이날 선발전에서도 주니어답지 않은 유연하고 자신감 있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중학교 시절 소년체전에서 1-2위를 휩쓸던 1년 선배이자 라이벌인 천송이(세종고)를 눌렀다. 볼 루틴에선 인순이의 '아버지'를 배경음악 삼아 애절한 감성연기를 펼쳤다. 리본 루틴에선 뮤지컬 '시카고' 삽입곡 '핫 허니 랙(Hot honey rag)'에 맞춰 깜찍발랄한 매력을 선보였다. 빨간 리본이 반짝이는 레오타드와 연기가 귀엽다는 말에 "저는 손발이 너무 오글거리는데…"라며 '킥킥' 웃는다.
김한솔은 내년 시니어 무대 데뷔를 앞두고 있다. 2~3개월 러시아 장기 동계훈련을 떠날 계획도 갖고 있다. 조기유학 덕분에 러시아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일곱살 차이 맏언니와 막내가 함께 태릉에 입촌하게 됐다. 덕담을 주고 받았다. "어릴 때부터 전 윤희언니를 '롤모델' 삼아왔어요. 언니의 시원시원하고 파워풀한 점프와 연기를 본받고 싶어요." 동생의 극찬에 언니 김윤희가 화답했다. "한솔이는 유연하고 학습력이 뛰어나죠. 저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될 거예요. 내년에 함께 아시안게임에 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