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부산아시안게임 마루 금메달리스트 김승일, 올해 로테르담세계체조선수권에서 유일하게 개인종합 결선에 오른 박민수,
'몸 아파도 참고 한 운동, 가슴 아파 못살겠다.'
10일 오후 2시, 한양대 본관 앞에 체조인 80여 명이 결집했다. 수십 개의 플래카드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섰다. 한양대가 2015년부터 체조, 육상, 유도부 등 '비인기 종목' 신입생을 뽑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다. 한양대측은 '반값 등록금'으로 인한 재정난속에 1년에 50억원이 소요되는 운동부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2주 전쯤에야 이 사실을 전해들었다. 청천벽력이었다. 종목별 특성이나 성적도 고려하지 않고, 사전 논의나 절차도 없는 학교측의 일방적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이날 시위엔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도마의 신' 양학선(21·한체대)이 한양대 동료들과 함께 맨 앞줄에 섰다. 올림픽 챔피언으로서 체조계의 위기를 행동으로 지켜내는 '에이스의 품격'을 보여줬다.
양학선은 한체대 3학년이다. 한양대 출신인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선배 김승일(28·수원시청)과 지난해 푸톈아시아선수권 메달리스트인 후배 고예닮(19), 박민수(19)와 대표팀에서 동고동락했다. 한양대의 위기를 나몰라라 하지 않았다. 체조계 전체의 위기로 인식했다. "한양대 체조부의 위기는 단지 한양대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좋은 선후배들이 이렇게 많은데 팀을 없앤다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경희대, 한양대, 한체대 등 '대학 3강' 중 하나라도 없어질 경우, 다른 학교들의 존립 역시 위협받게 된다고 했다. 임덕호 한양대 총장을 향해 "앞으로 한양대에서 '제2, 제3의 양학선'이 될 수 있는 선수들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한양대가 체조선수들의 꿈을 키워줄 수 있는 요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 꿈을 저버리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현장에선 학부모 대표들이 한양대 총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학교측의 정확한 입장을 듣고, 체조인 2000여 명의 해체 반대 서명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학교측은 사전 약속 없는 면담은 불가하다는 방침을 알렸다. 학부모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신입생 이한열 선수의 아버지이자 학부모 대표인 이원삼씨는 "학교측으로부터 아무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 없어질 학교인 줄 알았다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을 믿고 보냈겠나"라고 성토했다.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시드니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레전드' 이주형 공주대 교수도 이날 집회를 위해 급상경했다. "대학 4년동안 국가대표로서 한양대의 이름을 알려왔다. 졸업 후에도 모교 한양대를 친정처럼 생각해왔다. 체조부를 해체시키는 기준과 명확한 이유가 궁금하다. 부디 다시 생각하셔서 체조부를 꼭 존속시켜주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신입생 국가대표 박민수, 고예닮 역시 "쟁쟁한 선후배들을 믿고 선생님들의 추천에 따라 입학했다. 해체될 줄 알았다면 한양대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승일 역시 "48년 체조 명문 한양대의 자부심으로 선수생활을 이어왔다. 체조부가 없어지면 내 모교, 내 뿌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학교가 해체되면 다른 학교들도 안전하지 않다. 후배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날 집회는 오후 4시30분쯤 김용수 한양대 대외협력처장이 시위대 앞에 나서고서야 끝이 났다. "총장님이 이번주내로 여러분들을 만나, 충분히 의견을 들으실 예정"이라는 뜻을 전했다.
매트위를 뛰고 굴러야 할 체조선수들이 한겨울 칼바람속에 거리로 나섰다. 국가대표 현역 선수들과 레전드 선배들이 2시간30분을 꼿꼿이 선 채로 버텼다. '도마의 신' 양학선도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체조계의 움직임은 유도, 육상부로 번져가고 있다. 13일 오전 9시 임덕호 한양대 총장과 학부모의 면담이 예정됐다. 런던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범을 비롯 송대남 최민호 이원희(이상 대표팀 코치) 등 스포츠 스타들이 현장에서 한양대 유도부 해체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런던올림픽 세계 5강, 대한민국 '비인기종목'의 현실은 아직 추운 겨울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