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막는 어른들, 韓핸드볼 존폐 기로

기사입력 2013-12-18 08:03


◇해외 진출을 가로막는 핸드볼계 분위기 속에 한국 핸드볼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한국 선수들이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 핸드볼 4강전에서 노르웨이에 패한 뒤 눈물을 흘리며 코트를 빠져 나오고 있는 모습,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국제 경험이 없으니 세계 대회에 나서면 겁부터 난다. 잘해봤자 다른 종목 선수들처럼 해외로 나설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의욕도 떨어진다."

한때 해외무대 진출을 노렸다가 친정팀의 방해로 꿈을 포기해야 했던 한 선수의 이야기다.

2013년 현재 유럽무대에서 활약하는 여자 핸드볼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기량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한국 여자 대표팀 선수들은 유럽 스카우트들의 '영입대상 0순위'다. 스카우튿르은 한국 대표팀 해외 전지훈련이나 국제대회에 몰려온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추억이 있다. 이상은 허영숙 최임정 허순영 홍정호(이상 덴마크) 명복희 김차연 오성옥 문경하(이상 오스트리아) 임오경(일본) 등 '언니'들은 1984년부터 2008년까지 7차례 올림픽서 메달 6개(금2은3동1), 국제핸드볼연맹(IHF) 여자세계선수권 우승(1995년)을 일궈냈다.

핸드볼 본고장 유럽에서도 최정상급 선수로 군림했다. 이들이 쌓은 업적은 한국 선수에 대한 관심으로 꾸준히 이어져 왔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한창 진행 중인 2013년 여자세계선수권에서도 일부 선수들이 직간접적으로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녀 통틀어 최강으로 발돋움한 프랑스 리그의 한 팀은 고액 연봉 뿐만 아니라 거주지-차량 제공 등의 당근까지 내밀었다. 하지만 계약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해외 진출은 그림의 떡이다. 친정팀이 놓아주지 않는다. 이적을 위해 필요한 이적동의서 발급 과정에서 매번 발목이 잡혔다. 대한핸드볼협회 선수규정에는 원 소속팀에서 이적동의서 없이 이적한 선수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2년간 자격이 정지된다. 이적을 이유로 팀을 이탈할 경우 소속팀이 풀어주기 전까지 복귀가 원천봉쇄되는 '임의탈퇴' 징계가 기다리고 있다. 때문에 선수들은 제의를 받아도 섣불리 나서지 못한다. 소속팀에 미운 털이 박힐까 속앓이만 한다. 구단 차원에서 해외 이적 제의가 암암리에 묵살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원 소속팀도 할 말은 있다. 갈수록 우수자원이 줄어드는 판국에 에이스까지 빠지면 팀 존폐까지 위협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선수 발굴 및 육성까지 들어간 투자의 대가인 이적료도 낮다는 지적이다. 핸드볼코리아리그에 참가 중인 8개 실업팀 중 SK슈가글라이더즈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모두 지자체 소속이다. 일부 구단은 핸드볼코리아리그 또는 전국체전에서 입상하지 못하면 당장 지원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우수 선수를 보내고 해외 구단으로부터 이적료를 받아 국내 팀 자생력을 키우자"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정을 바꾸자는 목소리는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축구, 야구의 성공 이면에는 박지성(PSV에인트호벤)-류현진(LA다저스)으로 대변되는 해외파가 있다. 흥행 뿐만 아니라 성적, 국제위상까지 삼박자를 모두 이뤄내는 단초가 됐다. '월드스타 윤경신' 등 해외파가 중심에 섰던 핸드볼 중흥기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 큰 이면에는 핸드볼 인재 확보가 있다. 해외 진출은 어린 선수들에게 핸드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목표가 된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해외 진출은 영영 꿈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여자 핸드볼은 변방으로 밀리고 있다. 한국은 18일(한국시각)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콤방크 아레나에서 펼쳐진 세르비아와의 대회 16강전에서 27대28, 1골차로 패했다. 세계선수권 2회 연속 8강행 실패다. 사상 첫 전임지도자 체제도 소용이 없었다. 연 2회 실시되는 대표팀 해외 전지훈련과 순수 국내파로 진행되는 핸드볼코리아리그 만으로 세계 무대 흐름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비판이 이번 세계선수권으로 증명됐다. 갈수록 세계무대와 격차가 벌어지면서 한국 선수들의 경쟁력도 점점 하락하는 분위기다. 그나마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이 반전의 마지막 기회다. 비단 여자 핸드볼 뿐만 아니라 핸드볼계 전체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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