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체육]체육시간,여학생 스스로 바꾼다

최종수정 2015-06-01 07:38


서울 동숭동의 서울사대부설여중의 학생들이 킥런볼 수업 중 1루로 달리고 있는 타자를 응원하기 위해 응원가를 부르고 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사뿐사뿐 걸어가 그대 공을 날려서~", "안타 날려라~ 5반 OOO!"

서울사대부설여중 킥런볼(기존의 야구를 모태로 발야구와 럭비를 부분적으로 혼합해 창안한 뉴스포츠) 수업이 있는 날. 체육시간 흔한 '운동장 돌기' 대신 여학생 무리들이 운동장 구석에서 머리를 맞대고 K팝 개사에 열중했다. 한켠에서는 야구선수들의 응원가를 바꿔 부르고 있었다. 킥런볼 경기가 시작되자, 준비한 응원구호들을 외쳤다. 서로를 응원하며 유대감이 한층 커진 모습이었다. 상대의 재기발랄한 응원에 웃음꽃이 피었다. 운동회날 풍경이 아닌 보통의 체육시간이다. 그녀들의 체육수업은 단순히 몸만 움직이는 시간이 아닌, 함께 즐기고 만들어가는 축제였다. 한 여학생은 "선생님이 시키지 않아도 우리끼리 모여서 상의해요. 애들끼리 응원구호 만들고 하는 게 재미있거든요"라며 웃었다.


학교체육 '가락고-영파여고 스포츠클럽 축구 친선경기' 가락고 여자축구클럽 발모아 여학생들이 영파여고를 맞아 연습경기를 펼치고 있다.
송파=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04.21

서울 제기동의 성일중학교 여학생들이 점심시간에 펼쳐지는 학급대항 교내 축구 리그에서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 가락고와 영파여고의 스포츠클럽 축구 경기가 있는 날. 남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여학생들의 축구를 응원하고 나섰다. 가레스 베일(레알 마드리드)을 연상케 하는 '날개 공격수' 여학생의 현란한 드리블에 남학생들 입에서 절로 탄성이 나왔다. 공 하나에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지만, 그 중에 빛나는 별도 있었다. 몇몇은 강력한 킥과 멋진 개인기를 선보이며 이목을 끌었다. 스포츠클럽이 활성화되며 남학생 못지 않은 실력을 갖춘 여학생들도 많이 나타났다. 남학생들도 '에이스'의 존재를 알았다. '에이스'가 슬리퍼를 신고 운동장 밖을 서성거리자 "선생님, 왜 쟤 투입 안해요?"라고 물었다. '에이스'는 부상 중이었다. 땀흘리는 여학생은 남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가락고 학생회장 김○○ 군은 "운동 잘하는 여자 애들은 학교에서 인기가 많다. 건강하고 발랄한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스포츠조선은 4주간 서울시와 경기도의 초·중·고 10개교, 228명의 여학생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의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체육수업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79.4%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학생들은 체육을 싫어하지 않았다. 지난해 교육부와 이화여대 학교스포츠클럽 리그 운영지원센터가 실시한 여학생 체육활동 현황분석에 따르면, 체육에 대한 여학생들 인식도 변하고 있다. '격렬한 스포츠에 참가하는 여학생은 여성답지 못하다'는 항목에 74.8%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여학생은 스포츠에 별 흥미가 없다'는 의견에 60.8%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체육을 잘하는 여학생들은 남학생에게 인기가 있다는 의견'도 23.2%였다.

현장의 체육교사들은 여학생들의 '자발적 의지'를 강조한다. 운동장에서도 '자기주도형'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체육은 몸으로 배우는 공부다. 아무리 프로그램이 좋아도, 시설이 좋아도 여학생들이 직접 나서 즐기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게 일선 교사들의 설명이었다. 실제 여학생 체육이 잘되고 있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를 구별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 역시 운동장을 뛰고 있는 여학생들이 어떤 '눈빛'을 하고 있느냐 였다.


서울사대부속여중.
이태구 상동고 교사는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집중을 하지 않는다. 흥미도가 없으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미라는 포장지로 의미를 잘 포장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했다. 이 교사는 "작년에 복도에서 컬링수업을 했다. 여학생들의 집중력이 대단했다. 어떻게 하면 이길까하는 의견을 주고받더라. 그 전까지 넋 놓고 체육을 피하려던 아이들의 변화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장경환 마장초 교사도 "억지로 시키는 건 일시적으로 하지만 여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수업을 하면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고 알아서 한다"고 설명했다.

'의지'가 만들어낸 변화는 상당했다. 앞서 언급한 두 사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땀의 맛을 알게된 여학생들이 보이는 흔한 변화 중 하나다. 조동호 혜원여중 교사는 "체육시간에 뉴스포츠 종목을 재밌게 이끌었다. 그렇게 하니 클럽이 생기고 같이 활성화되면서 방과후에도 그 종목을 즐기는 아이들이 절로 생기더라"고 했다. 혜원여중은 티볼 전국대회 단골 우승팀이다. 서울사대부속여중은 매년 체육대회를 개최한다. 최고 인기 종목은 에어로빅. 방과 후 운동장 곳곳에서 에어로빅하는 여학생들의 청량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2학년들이 참가하는 에어로빅은 졸업생들이 꼽는 학창시절 최고의 추억이다. 원종고 역시 체육대회 줄넘기 종목에 참가하는 여학생들의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교정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서울사대부설여중.
여학생 특유의 세심함, 공감과 소통 능력은 체육 과목에서도 빛난다. 여학생 스포츠클럽이 남학생 스포츠클럽보다 훨씬 더 잘 운용된다는게 현장의 평가다. 스포츠클럽에서 후배들을 유치하기 위해 직접 만든 포스터를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일부 스타플레이어들이 주도하는 남자 경기와는 달리 여학생들은 '함께' 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다. 신민석 서울사대부속여중 교사는 "여학생은 그룹별 과제를 주면 못하는 친구가 잘하는 친구에게 배운다. 남학생은 경기 위주지만, 여학생은 협동해서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체육 시간이나 클럽 내에서 서로서로 역할을 챙겨준다. 체육수업 시간에 심판도, 캐스터도, 응원단장도 될 수 있다. 모임 내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은 체육에 대한 흥미로 이어진다. 이 흥미가, 운동하는 습관으로 이어지고, 평생 운동을 즐기는 취미로 이어진다는 점은 의미 있다. 임성철 원종고 체육교사는 "스포츠클럽에서 경기가 끝나면 여학생들은 끌어안고 운다. 이기면 승리의 황홀함에, 지면 억울함에 눈물을 흘린다. 한번 경험하면 여학생들이 남학생에 비해 땀과 체육의 쾌감을 2배 이상 느낀다. 체육의 큰 맛을 몸소 느낀 여학생들에게 화장이 지워지고 땀 흘리는 조그만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여학생들이 체육에 재미를 느끼며 현장 역시 달라지고 있다. 전국스포츠클럽 대회에 참가하는 여학생팀의 수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정부 역시 여학생들이 체육 활동에 의지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시와 울산시 교육청은 여학생만을 위한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교육부는 4500개의 스포츠클럽 우수팀을 지원하는데 그 중 순수하게 여학생들로만 구성된 1200개팀을 별도로 우선 지원한다. 특정 요일에 여학생들만 운동장이나 체육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여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배포를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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