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훈 한체대 대학원 교수가 운동동작 분석연구 시간 양학선조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체조 국가대표 양학선, 복싱 국가대표 김형규, 자타공인 우등생 노진주양이 한조가 된 이날 수업의 열기는 뜨거웠다. 송파 한국체대=최문영 기자deer@sportschosun.com /2015.11.05/
초겨울 캠퍼스에서 '도마의 신' 양학선(23·수원시청)을 만났다. 지난 5일 한체대 대학원 강의실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에 몰두하던 양학선은 "초등학교 2학년 이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은 처음"이라며 싱긋 웃었다. 도마 앞에서 거침없이 날아오르던 양학선은 올해 2월 한체대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에 입학했다. '공부하는 선수' 인터뷰를 요청하자 "창피해서 안된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손사래쳤다. 공부를 망설이는 후배들을 위해 용기를 냈다. 대학원 진학에 대해 "공부는 당연히 이어가야 하는 걸로 생각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체중 아니면 안간다고 생각했다. 체고, 한체대도 자연스럽게 진학했다. 어릴 때 운동을 선택했듯이 대학원 공부도 지금 내겐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조원들과 동작분석 실험 계획을 세우고 있는 양학선.송파 한국체대=최문영 기자deer@sportschosun.com /2015.11.05/
양학선이 한체대 대학원생 노진주양(왼쪽) 복싱국가대표 김형규(가운데)와 함께 실험 계획을 세우다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송파 한국체대=최문영 기자deer@sportschosun.com /2015.11.05/
양학선이 운동동작 분석연구 수업시간, 지면발력기 실험에 참가하고 있다 있다. 송파 한국체대=최문영 기자deer@sportschosun.com /2015.11.05/
양학선이 조원들과 함께 모니터를 통해 지면발력기를 통한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한국체대=최문영 기자deer@sportschosun.com /2015.11.05/
'운동역학' 공부, 체조에도 도움 된다
윤석훈 교수가 지도하는 '운동동작 분석연구' 수업시간, 양학선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지면발력기'를 활용해 동작을 분석하는 운동 역학 수업, 윤 교수의 이론 설명에 이어 조별 실습이 시작됐다. '스마트 걸' 노진주씨, '인천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 김형규 등 동갑내기 친구들과 한조가 됐다. 한체대 학부에서 특수체육을 전공한 노양은 '똑 소리 나는' 우등생이다. 양학선은 수업중 놓치는 부분이나, 과제중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을 때면 스스럼없이 "진주야!"를 외친다. 질문도 주저하지 않는다. 양학선은 "모르는 것은 당연히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조별 토론에서 꽁무니 빼는 법도 없다.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한학기동안 한팀이 함께 실험하고,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조원들에게 미루거나 의존해서는 안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 하려고 한다"고 했다.
노양이 "학선이가 첫학기 3과목 모두 'A+'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양학선은 겸손했다. "공부를 잘했다기보다 빠지지 않고 출석하고 성실히 임한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공부 적응을 마친 2학기, 자신감있게 장애인스포츠 연구, 운동동작 분석연구, 체육측정 평가연구 등 4과목을 신청했다. 일주일에 하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려 9시간 마라톤 수업이 이어진다.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내년에는 리우올림픽이 있기 때문에 한 과목밖에 듣지 못한다. 재활하면서 시간이 조금이라도 날 때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둬야 한다"고 했다.
전공으로는 '운동역학'을 택했다. 타고난 재능과 절대적인 '감'으로 날아올랐던 세상에 없던 난도 6.4의 '양학선' 기술을 스스로 분석하고,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체조선수로서 이 공부는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날 수업중, 양학선이 점프 시범을 보였고, 조원들은 함께 기록을 측정했다. 팔을 흔들 경우, 흔들지 않을 경우, 체중과 동작 좌우 밸런스 등의 그래프를 면밀하게 분석했다. 양학선과 친구들은 지난시즌 이후 부진 이유도 운동역학적으로 설명했다. "햄스트링 근육이 70~80%인 상황이었다. 이 근육에 실전 때는 100~ 200%의 초인적인 스피드와 압력이 가해진다. 찢어진 근육에 당연히 무리가 갈 수밖에 없고, 몸이 그 압력을 버티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부하는 선수-운동하는 학생 체조국가대표 양학선 송파 한국체대=최문영 기자deer@sportschosun.com /2015.11.05/
송파 한국체대=최문영 기자deer@sportschosun.com /2015.11.05/
공부도 금메달리스트답게
앞만 보고 달려왔던 '도마의 신' 양학선에게 올시즌은 잠시 숨을 고르는 '쉼표'의 의미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 2011-2013년 세계선수권 2연패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쉼없는 질주는 부상으로 이어졌다. 양학선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놓쳤고,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 재활에 전념하는 한편 학업의 길로 들어섰다. 성실한 수업 태도는 정평이 났다.
이날 수업을 이끈 윤석훈 교수도 '애제자' 양학선을 칭찬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데 티도 안내고 성실하게 정말 열심히 한다. 한체대에서 메달리스트들을 많이 봐왔다. 화려할 때는 그게 전부인 줄 알고, 미래에 대한 준비에 소홀한 경우가 많았다. 선수로서 이룬 성과에 학문적인 자산이 더해지면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데 그 길을 외면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학선이는 다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작 분석은 경기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 과목이다. 10년 전만 해도 이렇게 정밀한 동작분석이 어려웠다. 적외선 카메라, 지면발력기 등 한체대 운동역학실의 최첨단 시설들을 활용하면 반나절이면 결과가 나온다. 양학선 스스로 기술을 분석하면서 경기력에도 큰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절친' 노양은 양학선에 대해 "함께 공부해보면 왜 금메달리스트인지 알 수 있다"고 극찬했다. "수업태도도 좋고, 필기도 과제도 정말 열심히 한다. 잘하든 못하든 꾀부리는 법이 없다. 교수님들도 칭찬을 많이 하신다. 훈련과 경기로 바쁜 중에도 손글씨로 과제를 꽉 채워 써오는 열정과 노력을 인정하신다"고 했다. 양학선과 모든 수업을 함께하는 복싱 국가대표 김형규 역시 "학선이는 분위기 메이커다. 웬만해선 수업을 빠지는 법도 없다. 입으로는 '하기 싫다'하면서도 옆에서 보면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고 증언(?)했다.
대한민국 체조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학선에게 공부의 이유를 물었다. "요즘은 평생공부다. 지식이 없으면 일단 불편하다"고 즉답했다. "'공부 아니면 죽는다'까지는 못하더라도 체육인으로서 올림피언으로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적어도 무식하다는 얘기를 들어서는 안되지 않나. 체육인의 품격을 위해 모두 꾸준히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계획대로라면 스물다섯살에 석사학위를 받게 된다. 졸업 이후의 계획은 아직 세우지 않았다. "박사과정을 할지는 고민해보겠다. 주변에서는 당연하게 가라고 하지만 박사과정은 결단을 하고 가야 열심히 한다. 남은 두 학기 동안 그 부분도 고민해보겠다"라고 신중하게 답했다.
영어 공부의 필요성도 절감하고 있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믹스트존에서 영어 인터뷰를 꿈꾼다. "런던올림픽 끝나고 2013년에 태릉선수촌에서 '1대1' 과외를 했었는데 이후 소홀했다. 하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보면 결국은 실천하게 된다"고 했다. 독한 영어공부를 다짐했다. "시작하기 전까지 힘들지, 막상 시작하면 무조건 열심히 한다. 다시 열심히 도전해 보겠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