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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단식 챔피언' 유남규 감독이 이끄는 에쓰오일탁구단이 해체 위기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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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쓰오일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회사 아람코가 대주주인 정유사다. 에쓰오일이 지난 2010년 탁구단을 창단한 것은 대한탁구협회 회장사이자 에쓰오일의 2대 주주였던 대한항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2013년 말, 에쓰오일 지분을 매각한 직후 탁구단의 존폐와 관련,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에쓰오일의 대표는 사우디 모기업의 CEO를 역임한 나세르 알마하셔 사장이다. 지난해 289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에쓰오일은 올해 흑자로 돌아섰다. 3분기까지 무려 8605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에쓰오일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01%에서 올해 1분기 5.44%, 플러스로 돌아섰다. 2분기 11.8%, 3분기 0.3%를 기록했다. '정유업계 4분기 영업이익률이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쏟아지고 있다. 역대 최고의 '반전' 실적을 기대하며 휘파람을 부는 가운데 에쓰오일 탁구단에만 칼바람이 들이닥쳤다.
탁구인들, 분노와 실망 "공동 대응"
실업탁구단 운영에 드는 비용은 연 10억원으로 추산된다. 탁구인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피땀으로 영업 이익을 내는 외국계 자본의 무책임한 결정에 극도의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비즈니스적인 이유로 탁구단을 만들었다가, 비즈니스가 끝나기가 무섭게 탁구단을 없앤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 탁구인은 "실업팀을 운영할 때는 장기적 비전이 필요하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뛰고 있는 실업팀은 '동아리'가 아니다. 전략적 제휴처럼 뚝딱 만들었다가 용도폐기됐다고 없애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유 감독은 "나를 믿고 에쓰오일 유니폼을 입은 박신우, 강지훈 등 고등학생 선수들과 학부모들을 볼 낯이 없다"며 고개 숙였다.
탁구계는 에쓰오일 탁구단의 해체를 탁구인 공동의 일로 인식하고 있다. 지난해 초 농심탁구단 해체 후 1년만에 또다시 터진 악재다. 27일부터 영주에서 개막하는 포스코에너지컵 실업탁구대회를 목전에 두고 탁구인들은 분노와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유남규 감독과 선수시절부터 막역했던 현정화 렛츠런 탁구단 감독은 "에쓰오일만의 일이 아니다. 탁구인들이 모여서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강문수 국가대표팀 총감독 역시 "팀이 없어지는 일만큼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고 했다.
에쓰오일이 해체된다면 남자실업팀은 삼성생명, KDB대우증권, KGC인삼공사 단 3개만 남게 된다. 탁구인들이 염원하고 추진해왔던 실업탁구리그, 프로리그는 커녕 4강 구도 유지조차 힘들게 된다.
지난 18일 알마하셔 에쓰오일 회장은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가 있는 날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알 마하셔 회장은 "더 '문화적'인 방식으로 이익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협력을 강화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스포츠도 문화다. 아마추어 스포츠단의 운영과 지원은 사회공헌적 성격도 짙다. 더군다나 한국 스포츠사에서 탁구의 입지와 영향력은 지대하다. 이에리사, 정현숙, 현정화, 유남규, 김택수, 유승민으로 이어지는 거룩한 계보는 국민적 자부심이다. 영화 '코리아'가 말하듯 탁구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었고, 남북을 잇는 끈이자, 전국민을 하나로 묶어내는 힘이다. 에쓰오일 마크를 단 국가대표 에이스, 고등학교 유망주들의 꿈을 하루아침에 꺾는 일, '1988 서울올림픽 탁구영웅' 유남규 감독의 팀을 하루아침에 없애는 외국계 자본의 결정은 '전략적'일지언정 '문화적'이지 않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