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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해냈다는 것이 정말 뿌듯하다."
2년전 2014년 도쿄세계선수권 때와는 달랐다. 런던올림픽 은메달 이후 '백전노장' 오상은, 유승민이 대표팀을 떠난 세대교체기였다. '월드클래스 수비수' 주세혁만이 남았다. "대한민국의 4강권을 지켜내기 위해 징검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선배들의 그늘에 가렸던 후배들에게 주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첫 주전으로 나선 도쿄세계선수권, 경험이 부족한 후배들은 고전했다. 주세혁 의존도는 절대적이었다. 주세혁의 활약으로 대만을 꺾고 조 1위, 8강에 올랐지만, 8강에서 다시 만난 대만에 분패했다. 주세혁이 패할 경우 그것을 만회해줄 후배가 없었다. 2년만에 다시 나선 단체전, 후배들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상수는 '맏형' 주세혁과 정영식이 일격을 당한 크로아티아전에서 나홀로 2포인트를 따내며 승리를 견인했다. 이탈리아전에선 정상은이, 루마니아전에선 3번 단식에 나선 막내 장우진이 맹활약했다. 조1위 결정전인 마지막 홍콩전에선 '톱랭커' 정영식이 상대 에이스를 끈질기게 추격하며 끝내 잡아냈다. 주세혁은 "2년전 도쿄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는 내가 꼭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그러나 이번 대회 조별리그 1위를 하는 데는 후배들의 활약이 컸다. 조별리그에서 후배들이 돌아가면서 활약해줬다. 세대교체 측면에서 성공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상수와 정영식은 "세혁이형이 이번 대회를 앞두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너희들이 해줘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도 형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우리 힘으로, 형과 함께 해냈다는 것이 정말 뿌듯하다"며 활짝 웃었다.
이상수와 정영식의 탁구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이상수는 '상남자'의 탁구다. 강한 체력에서 나오는 강력한 포어드라이브로 상대를 압도한다. 사이다처럼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탁구를 구사한다. 그러나 섬세함은 다소 떨어진다. 정영식은 전략가다. 상대의 수를 읽어내는 경기운영이 탁월하다. 지구전, 연결력에 있어서만큼은 따를 자가 없다. 볼 하나도 허투루 버리는 일 없는, 끈적하고 진득한 탁구다. 시니어 데뷔 이후 국내랭킹 1위를 놓치지 않았다. 파워와 선제 공격력 부족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플레이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이들의 훈련 스타일은 똑 닮아있다. '태릉 터줏대감' 강문수 탁구대표팀 총감독이 인정하는 '연습벌레'다. "기술, 랭킹을 떠나 이들이 훈련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라고 했었다. 태릉 탁구장의 불을 켜고 끄는 선수다. 야간에도 새벽에도 이들의 자율훈련을 계속된다. 만나면 탁구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홍콩전 전날도 둘은 방에서 끊임없이 비디오를 보며 상대를 분석하고 작전을 연구했다. 이상수는 "영식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작전을 쓸지 벤치에서 보면서 다 알고 있다. 탕펑과의 경기는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짠 작전에서 계획한 코스를 탕펑이 다 지키고 있더라. 영식이가 답답했을 것"이라고 했다. 정영식이 "맞아, 엄청 답답했어"라고 긍정했다. 답답한 순간에도 정영식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았다. 이상수는 "기술을 떠나서 영식이가 꾸역꾸역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상대를 괴롭힌 것이 주효했다. 4세트 듀스게임을 15-13으로 잡아낸 것이 승부처였다"고 했다. 이날 활약을 칭찬하자 정영식은 '선배' 이상수에게 공을 돌렸다. "첫날 크로아티아전에서 상수형에게 정말 고마웠다. 1단식에서 나를 이긴 후 기세가 오른 선수를 4단식에서상수형이 잡아줬다. 5단식에서 내가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다. 엄청 고마웠다. 조별리그에서 위기때마다 형이 견뎌줬다"고 말했다. "상수형은 정말 큰 대회에 강하다. 첫 세계선수권인데도 제몫을 다해줬다. 긴장할수록 더 집중력이 생기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이상수는 "안전하게 하자는 생각보다는 내가 연습한 것,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의 시선은 8월 리우올림픽을 향해 있다. 단체전 복식 파트너로도 함께 손발을 맞춘다. "이번 대회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자신감도 올라왔다. 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인터뷰가 끝나기 무섭게 두 남자의 탁구 수다가 시작됐다.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홍콩전 서로의 플레이, 상대의 플레이를 복기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탁구는 인생의 100%, 그 이상이다.
안재형 남자대표팀 감독 역시 제자들의 성장에 흐뭇함을 감추지 않았다. "조별 예선에서 선수 각각이 제몫을 해줬다. 승패를 떠나 선수들이 내용적으로 한단계 성장했다는 것이 큰 수확"이라며 웃었다. 조1위로 먼저 8강에 안착한 남자탁구대표팀은 4일 북한-포르투갈전 승자와 맞붙는다. 훌쩍 성장한 탁구 청춘들이 세계선수권 단체전 생애 첫 메달을 노린다.
쿠알라룸푸르=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