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큰 형' 우진, '작은 형' 본찬, '막내' 승윤, 3형제의 '금빛 수다'

기사입력 2016-08-07 15:43


6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우진, 구본찬, 이승윤, 박채순 감독. /2016.8.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지구 반대편 브라질 리우의 하늘에 드디어 가슴 뭉클한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금빛 낭보였다. 김우진(24·청주시청) 구본찬(23·현대제철) 이승윤(21·코오롱엑스텐보이즈)의 목에는 '억만장자'도 살 수 없는 '금덩이'가 걸렸다. 그들의 얼굴에도 보름달이 환하게 떴다. 김우진 구본찬 이승윤으로 구성된 양궁 남자대표팀이 7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리우의 삼보드로모에서 열린 2016년 리우올림픽 양궁 남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수확했다. 1990년대생 트리오가 4년 전 런던 대회의 '동메달 아픔'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2008년 베이징 대회 이후 8년 만에 남자 단체전 패권을 탈환했다.

이유있는 금메달이었다. '3인 3색', 신이 빚은 환상 조합이었다. '삼형제 케미'의 결정체였다. '큰 형'이자 주장 김우진은 진중했다. '작은 형' 구본찬은 이 보다 더 쾌활할 순 없었다. '막내' 이승윤은 큰 형과 작은 형의 눈치를 보지만 내공이 상당했다. 사실 김우진과 구본찬은 친구 사이다. 김우진의 나이가 한 살 많지만 학번이 똑같다. 그래도 '형'은 '형'이다.

김우진이 문을 열면, 구본찬이 연결하고, 이승윤이 마무리했다.

맨꼭대기 시상대에서 내려온 직후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따끈따끈'한 금메달을 품에 안은 삼형제를 만났다. '금빛 수다'는 유쾌, 통쾌, 상쾌했다.


6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 시상식에서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들고 있다. 왼쪽부터 김우진, 구본찬 이승윤. /2016.8.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과연 이 기분은 뭘까

셋 다 이번이 첫 올림픽이다. 첫 무대에서 금메달 '시위'를 했다. 금메달 소감은 모두 달랐다. 김우진은 아픔을 떠올렸다. 그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에 오르며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받았다. 바야흐로 '김우진 시대'가 활짝 열리는듯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위기가 왔다. 런던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커트라인 바로 아래인 4위를 차지하며 고배를 마셨다. "4년 전 4위로 런던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번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것만도 뜻깊게 생각했다. 4년 전에 마셨던 쓴잔과 약들이 약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동안 기다려 온 순간을 드디어 맞이 하는 것 같다." 진중한 성격답게 소감도 교과서였다.

구본찬은 톡톡 튀었다. "아주 아름다운 밤이다." '여배우'보다 더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그리고는 "말을 하고 싶지만 정말 표현을 할 수 없다. 승윤이가 마지막 발을 쏘기도 전에 '악'하고 나가는 것 보지 않았느냐. 너무 좋아서 그랬다"며 환하게 웃었다.


막내 이승윤은 '미소년'이었다. "금메달 딸 생각으로 온 것이 아니다"란 말로 주위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처음에 8강전 할때 그 때가 가장 많이 긴장됐다. 그 이후에는 환호가 많이 나와 흥분되고 기쁘기도 했다."

이승윤도 함박 웃음을 지을때가 있었다. '단체전 우승하면 서로서로 어떤 약속을 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차를 사자고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막내 캐릭터'였다.

긴장도 잠재운 팀워크

과연 구본찬은 긴장했을까. 그는 "속으로는 정말 긴장을 많이 했다"며 하소연했다. 그리고 "긴장되는데 들어가기 전 상대를 신경쓰지 말자고 했다. 해설하시는 박경모 박성현 감독께서 '너희들이 월드컵을 하는 것보니 흔들릴 때 상대의 점수를 보더라. 남들 기록 보지 말고 셋이서만 뭉쳐서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래서 즐겁게 믿고 하자고 했는데 그 부분에서 시너지 효과가 났다. 뭉치다보니 잘 되더라"며 웃었다.

'삼형제 케미'는 시위를 당기는 순서 그대로였다. 김우진이 명중시키면, 구본찬이 연결하고, 이승윤이 마무리했다. '10-10-10'의 향연이었다. 중간 중간에는 서로서로를 격려했다. 김우진은 "우리끼리 자신감을 복돋워주고 응원하면서 격려의 말을 했다. 우리한테만 집중했다. 중간 중간에는 '믿고 쏘자', '자신있게 하자', ''긴장되면 한 템포만 쉬어가라' 등의 말을 주고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승윤은 "내가 쏜 화살의 점수가 8점에서 9점으로 바뀌면서 그 세트를 가져왔다. 그것이 성공의 요인이었다"고 했다. 정리는 김우진의 몫이었다. "다 같이 기복없이 잘 쏴 순탄하게 흘러간 덕분에 금메달을 땄다. 그만큼 우리 모두가 준비를 잘 해온 것이다. 경기 후 서로 축하를 해줬다. '기다려 온 시간이 결국 금으로 돌아왔다. 고생많았다'면서…." 큰 형은 큰 형이었다. 끈끈한 팀워크는 긴장도 잠재워버렸다.

'형'과 '작은 형'의 옥신각신

구본찬은 '꿈' 이야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꿈을 꾸지 않았는데 박성현 감독(해설위원)께서 특별한 꿈을 꾸셨다고 했다. 주장인 우진이가 그 꿈을 샀다. 지갑을 들고 나오지 않아 중요한 장비인 나크(화살을 시위에 걸치는 데 쓰이는 부품)를 드렸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삼형제'는 이제 다시 '적'으로 돌아간다. 개인전이 남았다. 김우진은 최대한 절제했다. "싸운다기 보다 단체전이랑 똑같다고 생각한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한다고 해서 해코지 하는 일은 없다. 다같이 준비하고 다같이 나온 선수단이다. 나 혼자 잘되자고 남을 짓밟을 수 없다. 서로서로 힘들 때 단체전처럼 격려해주고 누가 되든 개인전에도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다."

구본찬은 '비토'였다. "이젠 적이다. 오늘 이후로 적이다." '농반진반'으로 목청 높여 이야기했다. '김우진의 얘기는 다르더라'고 하자 "그래도 적이다. 쟤도 그럴 것이다. 오늘만 즐기고, 내일 눈을 뜨면 적이고 경쟁 상대"라며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구본찬의 도발에 김우진이 미소로 화답했다. "저 친구가 원래 재미있는 친구다. 상관없다. 서로 도와서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한다."

"오늘 저녁 샤워를 한 후 방에서 셋이 모여서 금메달을 다시 만져 볼 것이다. 아차, 큰 일이다. 이름을 적어 놓아야 하는데, 아니면 헷갈린다. 서랍에 꼭 넣고 문을 잠글 것이다." 구본찬의 말에 다시 한번 박장대소가 터졌다.

하나로 똘똘 뭉쳐 금맥을 캔 3인3색의 '황금 궁사' 김우진 구본찬 이승윤. 한국 남자 양궁은 불가침의 세계 지존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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