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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21·코오롱엑스텐보이즈)의 마지막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자비는 없었다. 10점이었다.
다시 만난 미국, 적수가 아니었다. 기를 펴지 못하게 '텐-텐-텐'을 연발했다. 김우진(24·청주시청) 구본찬(23·현대제철) 이승윤, 1990년대생 트리오가 해냈다.
박채순 남자 양궁 대표팀 감독은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이렇게 잘 할지 몰랐다. 단 한 차례도 기복이 없었다"며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바람 때문에 우리가 10점 받을 걸 8점을 받으면 상대는 7점이다. 우리가 세계 최고인데 우리가 8점이면 상대는 6~7점이다'라고 말해줬다. 내가 선수들에게 주문한 것은 '즐기라'는 것 하나뿐이었다"고 했다.
입가에 미소가 만발했던 김우진은 정색을 하며 발끈했다. "절대 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숭이의 해라서 성적이 좋게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준비를 많이 했고,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오늘의 결과가 있는 것이다. 운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럴 만했다. 그들은 매일 활과 전쟁을 했다. 태릉선수촌에서 하루 평균 400~500발을 쐈다. 최대 600발까지 시도한 적도 있다.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손이 퉁퉁 부었다. 금메달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 남자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은 하루에 평균 700발씩 쏜다고 들었는데, 실제 하루 연습량이 어느 정도 되느냐'는 외신 기자의 질문도 있었다. 김우진은 "숫자를 자세히 세보지는 않았는데 하루에 400발, 많게는 600발까지 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 자리에는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건 미국과 호주 선수들이 있었다. 그들은 놀라움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머쓱해진 시선은 허공을 맴돌았다.
굵은 땀방울에 치밀한 전략이 더해졌다. 대표팀은 지난해 브라질 리우 삼보드로무서 테스트이벤트(프레올림픽)를 치른 뒤 태릉선수촌에 똑같은 형태의 '모의 삼보드로무'를 만들었다. 삼바축제 때 카니발 행렬이 지나가는 시멘트 도로를 개조한 삼보드로무는 바닥이 고르지 않아 사대가 무대 위에 꾸며졌다. 평지에서 쏘는 일반 양궁장과 다르다. 착시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 뿐이 아니다. 훈련장에 흘러나오는 음악도 리우조직위가 사용하는 곡을 선택할 정도였다. 또 세계 최초로 훈련장에 전자표적지를 설치했다. 선수들의 화살 위치와 성적을 실시간으로 받아보고 자료를 축적해 개선점을 찾았다.
야구장 훈련도 큰 힘이었다. 양궁 대표팀은 지난달 고척 스카이돔에서 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훈련을 실시했다. 소음과 조명에 대비한 실전 담금질이었다. 박 감독은 "야구장을 절대 잊지말라고 했다. 야구장 훈련이 많은 도움이 됐다. 팀 훈련 중 최고의 훈련이었다"고 평가했다. 김우진도 "결승전과 비슷했다. 관중이 많고 중압감도 심했다. 돔구장 조명도 여기와 흡사했다. 그때를 잊지 않고 리우올림픽을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삼보드로모서 태극기가 훨훨 휘날렸다.
이제는 개인전이다. 남자 양궁 개인전에선 김우진이 72발 합계 700점을 쏴 이번 대회 1호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1위에 올랐다. 구본찬이 681점으로 6위, 이승윤이 676점으로 12위를 기록했다. 당초 예상한 예선 1·2·3위, 2·3·4위, 1·2·5위에서 벗어난 결과였다.
다행히 조별 배정에서 운이 따랐다. 본선은 예선 성적을 토대로 A에서 H까지 8개 조로 나뉘어 토너먼트에 돌입한다. 경기마다 승리하면 8강에서 A-B, C-D, E-F, G-H 조 승자가 맞붙는다. 김우진은 A조, 이승윤은 C조, 구본찬은 F조에 배정됐다. 세 선수가 모두 8강전에서 승리하면 A조 김우진, C조 이승윤이 4강에서 맞붙는다. F조 구본찬은 결승전까지 한국 선수를 피할 수 있다.
12일이 D-데이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