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십자인대 파열' 박상영을 일으켜세운 아버지의 편지

기사입력 2016-08-10 11:00






남자펜싱 박상영이 9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3경기장에서 열린 펜싱 남자 에페 결승전에서 제자 임레(헝가리)를 상대로 승리한뒤 환호하고 있다.2016.8.9/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D

2012년 경남체고 2학년 때 세계청소년펜싱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2013년, 고3땐 국가대표선발전에서 걸출한 선배들을 모두 찔러내며 최연소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4년 첫 출전한 시니어 국제대회에서 보란듯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선 남자에페 대표팀 '막내'로 나서, 형님들과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그해 국제펜싱연맹(FIE) 세계랭킹 2위를 찍었다. 전광석화같은 발놀림으로 날아오르는 10대 '괴물 검객' 박상영의 발견에 펜싱계는 환호했다.

돌도 씹어먹을 나이, 스무살 청춘에겐 쓰라린 시련도 닥친다. 리우올림픽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할 2015년은 박상영이 펜싱 검을 잡은 이래 가장 힘든 시기였다. 3월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대에 올랐다. '처음으로 하늘을 원망하게 된다'고 했다. 지난 2월 태릉선수촌에 복귀할 때까지 극심한 불안감 속에 10개월을 꼬박 불확실한 재활에 매달려야 했다.

승승장구해온 아들의 청춘이 막다른 길에 몰렸다. 나홀로 모든 것을 버텨내야하는 순간, 부모님은 유일한 '비빌언덕'이었다. 펜싱밖에 모르는 '펜싱바보' 아들을 없는 형편에도 열과 성을 다해 뒷바라지해온 헌신적인 부모님이다. 어머니 최명선씨는 전국의 사찰을 돌며 날마다 아들을 위한 108배를 올렸다. 아버지는 3월, 서울에서 재활중인 아들에게 한권의 책과 함께 편지를 보냈다. '국가대표 심리학'이라는 제목의 책 앞에 '일체유심조' 라고 적어넣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세상사 모든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했다.

시련에 부딪친 국가대표 아들을 향한 아비의 바람도 또박또박 적어넣었다. 경상도 아버지들이 흔히 집에서 그러하듯 귀한 아들의 이름 뒷글자를 따 '영'이라고 불렀다. "계속 이길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실패와 어려움을 이겨내는 강한 힘을 가진 '영이'가 되었으면 한다. 충고는 더 나은 사람들의 말에만 귀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의 말에도 귀기울일 수 있는 아들이었으면 한다. 아빠의 바람은 '~했더라면 좋았을 걸'하는 늦은 후회 '~한다면 어쩌지' 하는 이른 걱정을 하는 아들이 아니라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아들이면 하구나."

아들의 재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아버지가 따로 써보낸 한장의 편지는 절절했다. '영아 많이 힘들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빠는 너무 마음이 아프네. 영아, 하늘이 우리 영이에게 시련과 아픔을 내리니 그것은 너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게 하기 위한 것이라 믿는다. 하늘이 우리 영이에게 비바람과 추위를 내리는 것은 거대한 거목이 되게 하기 위함이라 믿는다. 그리하여 이겨내고 또 이겨내면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강인한 영아로 태어날 것이라 아빠는 믿는다. 우리 아들이 작은 패배에 위축되지 않고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것이라는 것을 아빠는 믿는다. 그리하여 그 끝은 위대하리라는 것을 아빠는 믿는다.'


남자펜싱 박상영이 9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3경기장에서 열린 펜싱 남자 에페 결승전에서 제자 임레(헝가리)를 상대로 승리한뒤 환호하고 있다.2016.8.9/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D

박상영 선수가 9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에서 열린 펜싱 남자 에페 결승전에서 헝가리 제자 임레 선수를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박상영 선수가 태극기를 들고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2016.8.9/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A

남자펜싱 박상영이 9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3경기장에서 열린 펜싱 남자 에페 결승전에서 제자 임레(헝가리)를 상대로 승리했다. 시상식대위의 박상영. 2016.8.9/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D
10일 오전(한국시각) 지구 반대편, 브라질 리우에서 아버지의 모든 바람이 기적처럼 현실이 됐다. 박상영은 2016년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결승에서 '45세 백전노장' 게자 임레(헝가리)를 상대로 15대14,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9-13, 10-14 스코어를 15대14로 뒤집은 기적같은 대역전 드라마였다. 비바람과 추위를 이겨내고 더욱 강인해진 나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정신력의 승리였다.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친 백전노장 임레가 눈물을 쏟았다. 스무살 청춘이 대한민국 펜싱에 첫 금메달 낭보를 안겼다.

박상영의 메달은 대한민국 선수단의 3번째 금메달이자, 펜싱 에페 종목에서 따낸 첫 금메달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자플뢰레 김영호,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사브르 김지연의 개인전 금메달 이후 남자에페 첫 금메달이자, 펜싱 사상 3번째 개인전 금메달, 단체전(런던올림픽 남자사브르)까지 통틀어 총 4번째 금메달이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작은 패배에 위축되지 않고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 아들'의 끝은 진정 위대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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