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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노주환 기자]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 사업은 한국 스포츠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돈줄이다. 정부의 한 해 스포츠 분야 예산 중 90% 이상을 스포츠토토에서 발생한 기금으로 충당한다. 그런데 정부가 공영으로 운영하는 스포츠토토 사업이 2년째 정체하고 있다. 총 매출액 기준 6조원 초반에서 맴돌고 있다. 합법 스포츠토토 상품의 경쟁력과 시스템이 시대 변화에 따라 한계에 봉착했다. 스포츠토토 기금을 달라고 하는 곳은 많은데 시장과 상품이 성장을 멈춘 듯 한 양상이다. 스포츠조선은 스포츠토토 공영화 출범 원년을 맞아 '뉴(NEW) 스포츠토토' 시대를 열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다. 스포츠토토의 판을 키우지 않는 한 국내 스포츠 발전의 속도는 매우 더딜 것이다.
①공백(9시간)을 지우고, 한도(10만원)를 늘리자
또 하나는 1인당 투표 금액 한도 제한이다. 국내에선 회차당 온·오프라인 모두 총액 10만원으로 한도를 정해두고 있다. 토토 시장을 아는 전문가들은 10만원 기준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고물가와 떨어진 돈의 가치, 그리고 한도를 정하지 않고 있는 해외와 불법 사이트들과의 경쟁에서 10만원 한도는 유명무실하다는 것이다. 이미 오프라인 스포츠토토 판매점에선 10만원 이상 구매를 요청하는 꾼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국내 6500여곳 판매점주들은 매출을 고려할 때 이런 꾼들을 외면하기 어렵다고 한다. 소액 구매 손님들로는 밥벌이가 어렵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반면 온라인(베트맨 사이트)을 이용한 발매에선 실명 등록이 필요한 절차라 기술적으로 한도 체크가 가능하다. 싱가포르 토토 수탁사업자 '싱가포르 풀스'의 경우 "투표금액에 제한을 두지 않고도 과도한 금액의 베팅을 하는 구매자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기술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가동하고 있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는 토토 사업을 사행성으로 간주한 동시에 또 중독성을 너무 우려하고 있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중독을 예방하면서도 스포츠토토의 사이즈를 키우는 노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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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없이 요즘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모바일로 안 되는 게 없는 시대에서 국내 합법 스포츠토토는 작동을 하지 않고 있다. 국내 스포츠토토 사업을 운영하는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은 "모바일 시스템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차세대 시스템을 개발 중에 있고, 2027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모바일 발매에 대한 준비가 늦었다. 시대 변화에 맞춰 모바일로 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걸림돌이 여럿 있었다. 지난 7월 1일부터 시작된 스포츠토토 공영화 준비로 인해 기존 외부 수탁사업자와 공단은 시스템 전환의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한두푼 드는 전환 사업도 아니었다. 수백억원이 투입되는 변화였다. 게다가 모바일로 구매하는 시대에선 청소년들의 접근이 용이해질 수도 있다. 토토 구매가 금지돼 있는 우리나라 초중고생들 중 일부가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토토를 즐기는 게 사회 문제로 불거지기도 했다. 이들의 주된 채널이 모바일이다. 불법 도박 사이트의 모바일 체제는 우리 젊은 세대들의 구미에 딱 맞춰져 있다. 그런데 합법 스포츠토토는 모바일로 하고 싶어도 즐길 수 없는 게 시장의 현실이다. 오프라인의 판매점주들은 모바일 체제를 반기지 않는다. 그들의 존립과 이해 상충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소재 한 판매점주는 "토토 시장으로 새롭게 유입되는 구매자가 적은 상황에서 모바일로 구매할 수 있게 되면 우리 같은 오프라인 점주들의 매출이 줄 수밖에 없다. 판매 수수료를 올려주든지 생존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바일 체제 전환이 대세이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고려하면서 풀어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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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첫 발매 시작한 국내 합법 스포츠토토는 올해로 25년차를 맞았다. 2023년 처음으로 연 매출 6조원 시대를 열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2020년 한해를 빼곤 매년 수천억원씩 매출이 우상향했다. '그냥 놔두면 무한 성장하는 땅짚고 헤엄치는' 사업이라는 얘기도 돌았다. 그런데 2024년 매출액이 2023년 대비 1200억원 정도 줄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 수탁사업자 등은 이 변화에 깜짝 놀랐다. 스포츠토토 공영화 원년인 2025년도 역시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지 않고 있다. 공단 측에 따르면 "상반기 흐름을 고려할 때 올해 매출액은 6조원 초반이 될 것 같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합법 스포츠토토 구매자가 이제 올드해졌다. 시장에 새로운 유입자를 끌어모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프라인 토토 판매점을 이용하는 구매자들의 나이대가 젊어지지 않고 있다. 25년 전 토토를 맛본 스포츠팬들의 나이가 이제 50대를 넘긴 것이다. 합법 시장에 나이 젊은 신규 유입자가 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토토 판매점에는 늘 오는 나이든 손님들만 이용하고 있고, 온라인 베트맨 사이트에 젊은 신규 유입자들의 가입은 기대이하 수준이라고 한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젊은 소비자들은 합법 시장이 아닌 불법 시장에서 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구매자들의 놀이터가 되어야 할 토토 판매점의 시설 개선, 모바일을 이용한 '스마트슬립' 구매 시스템 도입 같은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종이 마킹 슬립지 대신 휴대폰을 이용한 상품 발매가 가능한 '스마트슬립' 발매 시스템은 민간 스포츠토토 정보 제공 업체 이용자들을 합법 스포츠토토로 유인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장치다. 현 오프라인 판매점주들의 매출액 신장과 모바일 전환으로 가는 과도기에 도움이 되는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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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과 수탁사업자 실무진은 현재 합법 토토 상품의 한계를 알고 있다. 그들은 "여러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지만 단 시간에 전부 수정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사업 형태가 국가의 독점 공영체제라 민간이 운영하는 해외 업체처럼 빠르게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상품의 경쟁력을 시장 변화에 맞게 빠르게 끌어올리지 못한다.
전문가들이 국내 토토 상품에서 지적하는 문제는 상품의 배당률과 환급률이다. 영국(윌리엄힐 87%) 싱가포르(풀스 86%) 홍콩(자키클럽 86%) 등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환급률은 63%(이상 2021년 기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쉽게 말해 국내 합법 스포츠토토를 구매하는 것 보다 해외 상품을 사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건 낮게 설정되는 상품의 배당률과 직결돼 있다. 똑같은 경기의 배당을 해외 업체 보다 0.2~0.3 정도 낮게 책정하면 결과를 맞췄더라도 환급받는 금액이 적어 진다. 그러면서도 공단은 토토를 통한 체육진흥기금 조성에 사활을 걸어왔다. 지난해 기준으로 1조8681억여원의 기금을 만들었다. 매출은 줄었는데 기금은 늘었다. 이건 낮은 배당과 환급으로 이룬 '웃픈' 성적표인 셈이다. 문체부도 이런 실상을 알고 배당률과 환급률 조정을 위해 공단과 개선을 위한 대책을 연구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있고, 상품의 개선을 위해 배당률과 환급률을 연구 중이다"고 말했다. 수탁사업자 한국스포츠레저는 올해 프로야구의 전반전 세부 파생 상품 도입 등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배가 중이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