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서 금, 은, 동메달을 한꺼번에 따냈다. 종목도 다양하다. 최가온이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김상겸이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유승은이 빅에어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대회 전 쇼트트랙(10명) 보다 더 많은 11명의 선수가 출전하며 주목을 받았던 스노보드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기대 이상의 성적표를 만들어내고 있다. '효자종목' 쇼트트랙의 부진과 맞물려, 스노보드의 선전은 상대적으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 스노보드의 황금기, 그 뒤에는 '키다리 아저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있다. 대학 시절 스키 선수로 활약했던 신 회장은 "경영을 하지 않았다면 스키 선수가 됐을 것", "100세까지 스키를 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각별한 스키 사랑을 자랑한다. 신 회장은 2014년 대한스키·스노보드협회장에 취임한 이후 "한국 스키·스노보드의 르네상스를 이끌겠다"며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다. 지난 12년간 약 300억원 이상을 지원했다. 평창 대회 당시 테스트 이벤트 등을 지원하기 위해 투자한 금액까지 합하면 800억원이 넘는다.
신 회장은 한국 설상의 틀을 완전히 바꿨다. 전지훈련과 국제대회 참가, 최신 장비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매년 롯데 소유 일본 아라이리조트를 국가대표 전지훈련 장소로 무상 제공하고 있다. 기술 강화를 위해 설상 종목 강국인 미국, 캐나다, 핀란드 스키협회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동기부여를 높이기 위해 포상 제도도 확대했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뿐 아니라 4~6위 선수까지 포상금을 받도록 규정을 바꿨다. 남자 하프파이프의 이채운은 이번 대회에서 아쉽게 6위에 자리했지만, 1000만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최가온도 협회 포상금 3억원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정부포상금 6300만원, 연금 등을 받으며 돈방석에 올랐다.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 오메가로부터는 950만원 상당의 시계도 받았다. 오메가 회장이 직접 채워주며 화제를 모았다.
사진출처=최가온 SNS
사진제공=롯데그룹
2022년에는 아예 롯데 스키·스노보드팀을 창단했다.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강조한 신 회장은 유망주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 구축을 위해 직접 팀 운영에 나섰다. 당시 영입한 유망주가 최가온과 유승은이다. 신 회장은 선수들이 비용 걱정 없이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훈련 지원비, 장비 예산 등을 제공했다. 국제 무대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원하는 선수들의 요청으로 영어 교육까지 도왔다. 이 밖에 멘탈 케어는 물론, 국제 대회에 개인 트레이너와 전담 매니저까지 파견했다.
신 회장은 선수 시절 경험을 살려 디테일한 지원을 이어갔다. 신 회장은 국제대회마다 따로 베이스캠프를 구축을 지시했다.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로를 줄이는 동시에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이탈리아 현지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했다. 장비 전문가 2명, 체력 지원 담당자 6명, 코치 3명, 행정 담당자 4명 등을 파견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장비 전문가를 2명이나 보낸 것도 설상 선수에게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신 회장은 설질만으로도 어떤 장비가 최적인지 알 정도로 조예가 깊다.
선수 사랑도 각별하다. 2024년 최가온은 스위스 전지훈련 중 척추 골절 사고를 당해, 선수 생명의 위기를 맞았다. 사고 소식을 들은 신 회장은 주저 없이 수술 및 치료비로 7000만원을 지원했다. 최가온에게 "오직 회복에만 전념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건강을 회복한 최가온은 이후 신 회장에게 직접 감사의 손 편지를 전달했다. 당시 신 회장의 신속한 지원이 없었다면 최가온의 올림픽 금메달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최가온은 귀국 후 "가장 힘든 시기에 응원과 후원을 해주셔서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 같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신 회장은 꽃과 케이크 선물로 화답했다.
이같은 신 회장의 모습은 한국 양궁을 여전한 세계 정상으로 이끌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정 회장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확고히 해 대한양궁협회를 가장 투명한 조직으로 만들었고, 심박수 측정 장비, 훈련 지원 로봇 등 최고 수준의 장비와 기술 등을 제공하고, 진정성 있는 소통을 통해 선수들이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챙겼다.
정 회장의 지원이 한국 양궁을 세계 최강으로 만들었듯, 신 회장의 아낌없는 투자는 불모지 한국을 스노보드 강국으로 바꿔냈다. 애정이 없다면 할 수 없던 일, 신 회장의 뚝심이 만든 결과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