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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물' 끼얹은 V리그, 아마추어 행태 근절해야

임정택 기자

기사입력 2017-02-15 18:06


팀 동료들과 다른 디자인의 민소매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한국전력 세터 강민웅(왼쪽에서 세 번째). 사진제공=한국전력

끓어오를 만한 시점에 찬물을 부은 격이랄까. '리그 킬' 쯤 돼겠다.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배구인기. 하지만 현장의 모습은 한심하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프로 답지 않은 주먹구구 행정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22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은 만원 관중으로 넘실거렸다. 이날 2016~2017시즌 NH농협 V리그 올스타전이 열렸다. 함박눈에 칼바람이 동반됐지만, 무려 5033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유관순체육관의 정원은 4500석이다. 입장권 온라인 예매는 20분만에 매진됐다. 1시간만에 '완판'됐던 지난 시즌 올스타전보다 40분 앞당겨졌다. 현장판매분 500석도 발매 30분만에 동이 났다. 나날이 치솟고 있는 배구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던 분위기였다.

그로부터 1개월 여,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14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 한국전력 전. 한국전력이 12-14로 추격중이던 1세트, 박주점 경기감독관의 결정으로 한국전력 점수는 11점이 깎여 1점이 됐다. 세터 강민웅은 퇴장당했다. 강민웅이 등록되지 않은 유니폼을 착용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왜 강민웅은 미등록 유니폼을 입었을까. 한국전력 선수들은 손수 유니폼을 챙긴다. 강민웅이 실수로 원정이 아닌 홈 유니폼을 담았다. 뒤늦게 확인한 뒤 부랴부랴 선수단 숙소 인근 마트 주인에게 부탁을 해 유니폼을 공수했지만, 색깔만 같은 뿐 등록되지 않은 유니폼에 팀원들의 유니폼과 디자인도 달랐다. 주무가 장비 및 유니폼을 챙기는 구단들이 있으나 한국전력은 선수가 직접 챙긴다. 기본적인 부분도 체크하지 못하고 넘어간 게 1차적인 문제였다. 명색이 프로인데 유니폼을 혼동하는 실수를 저지른 강민웅의 과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한국전력은 미등록 유니폼이라는 것을 인지, 경기 전 박 경기감독관에게 강민웅 출전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박 경기감독관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하지만 V리그 대회 요강 48조에 '팀원들과 다른 유니폼을 입은 선수(리베로 제외)는 팀원들과 같은 유니폼을 착용하기 전까지 경기에 참여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명백한 규정 미숙지였다.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은 강민웅의 유니폼이 다른 점을 지적하며 강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무려 30여분 경기가 중단됐다. 모든 장면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도둑 맞은 시간에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박 경기감독관이 입장을 바꾸면서 강민웅이 퇴장 당하고 강민웅이 뛰는 동안 한국전력이 쌓은 11득점은 무효 처리됐다.

뒤늦은 조치 역시 자의적이었다. 미등록 또는 팀원과 다른 유니폼 착용 선수는 원천적으로 출전 불가 처분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코트에 올랐다. 이 경우에는 유니폼 착용 위반 규정에 근거, 감독 또는 선수에게 벌금이 부과된다. 해당 선수 퇴장과 점수 삭감에 대한 처벌 규정은 명시돼 있지 않다.

그런데 왜 규정에도 없는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일까. 한국배구연맹(KOVO) 관계자는 "경기감독관이 관련 규정이 아닌 유사사례를 적용해 결정을 내린 것 같다. 유니폼의 문제가 아닌 부정선수로 판단해 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니폼은 '통일성'을 전제로 한다. 다른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것은 아마추어 사회인 스포츠에서 조차 상식으로 통한다. 강민웅 출전을 허용한 것이 1차적 문제, 뒤늦게 말을 바꿔 내린 징계 조차 근거 없는 조치였다는 게 2차적 문제다.

겨울 넘버원 스포츠로 발돋움하고 있는 V리그, 팬들에게 진정한 '프로 스포츠'로 인정받기 위해선 이러한 주먹구구 식 아마추어적 행태는 속히 근절돼야 된다. 해프닝으로 웃어 넘기기에는 프로란 단어의 의미가 너무 무겁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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