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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원 대한항공 감독(66)은 밥보다 빵을 좋아한다. 또 와인과 캐비어를 즐긴다.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 영향이다. 2007년 국내 프로배구 사령탑을 처음 맡기 전까지 주로 이탈리아에 머물렀다. 사고방식도 서구적이다. 지난 4월 중순 대한항공 지휘봉을 잡자마자 천명한 것이 '합숙 금지'였다. 박 감독은 "팀에 부임하자마자 선수들을 모두 출·퇴근하게 만들었다. 선수들에게 필요없는 스트레스를 주지 말자는 취지였다"고 회상했다. 박 감독이 '합숙 금지'를 통해 선수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자율과 책임감이었다. 대한항공에는 베테랑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강압보다는 선수들의 의지에 맡기는 선택을 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굉장히 좋아하더라. 자유를 주니 스트레스를 덜 받더라. 그런데 오히려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는 선수들이 하루 전에 스스로 합숙을 하기도 했다. 그것까지 말릴 수는 없었다"며 웃었다.
박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다. 세계배구 흐름을 빠르게 파악한다. 특히 국내에 스피드배구를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박 감독은 "상대가 블로킹을 준비하기 전에 공격을 이뤄내야 하는 것이 스피드배구다. 이 철학을 대한항공화시킨 것이 적중했다. 공격 테크닉이 부족한 선수들에게는 세터가 공격을 할 수 있도록 개개인마다 차별화된 스피드를 부여하도록 강조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첫 번째 관문을 넘었다. 지난 7일 남은 승점 1점을 채우면서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챔피언결정전이 남아있다. 사실 냉정하게 말해 대한항공이 박 감독에게 원한 건 한 가지였다. 대한항공의 한,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이었다. 대한항공은 V리그가 2005년 태동한 이후 세 차례 챔프전에 올랐지만 단 한 차례도 우승컵에 입을 맞추지 못했다. 박 감독은 "그 동안 길게 보고 팀을 운영했다면 단기전은 별도로 팀을 준비를 해야 한다. 팀 컬러가 달라야 한다"고 전했다. 또 "선수들에게 한이 있더라. 철저하게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멘탈 트레이닝을 시도해 한을 풀어보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