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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시선]감정표출 하려다 멈칫…'과격한 행동 자제' 요청에 경직된 코트

김영록 기자

기사입력 2020-11-18 10:28


현대건설 루소가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수원=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0.11.17/

[수원=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동료가 멋진 디그로 살려낸 공을 네트에 때린 공격수의 속내는 어떨까. 미안함과 창피함이 뒤섞인 복잡한 심정. 다음 플레이에 앞서 이 아쉬움을 털어내야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팀이 보기에)과격한 행동'을 해선 안된다.

17일 현대건설과 IBK기업은행의 도드람 2020~2021 V리그 여자부 경기 도중 독특한 장면이 연출됐다.

현대건설이 16-10으로 앞선 1세트, 공격권을 4차례 주고받는 랠리가 펼쳐졌다. 황민경은 기업은행 안나 라자레바의 강스파이크를 잘 받아올렸다. 하지만 정지윤의 토스는 네트에서 조금 멀었고, 루소의 공격 시도는 네트를 넘기지 못했다.

순간 분을 참지 못한 루소는 떨어진 공을 주워들어 세게 때리려는 동작을 취했다. 결정적 기회를 놓친 야구선수가 아쉬움을 담아 방망이를 휘두르거나 축구선수가 땅을 걷어차는 것처럼, 배구 경기 중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때 네트 옆에 서 있던 부심이 황급히 양손을 내저으며 만류했다. 루소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공을 옆쪽으로 굴린 뒤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대신했다. 방송 해설진도 "루소가 잘 참았다"며 웃음으로 넘겼다. 이날 라자레바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도 몇차례 격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루소 같은 추가적인 액션은 없었다.


IBK기업은행 라자레바가 공격 성공을 자축하고 있다. 수원=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0.11.17/
이는 한국배구연맹(KOVO)이 지난 12일 '선수의 과격한 행동방지 및 재발방지'를 남녀 13개 구단에 요청한데 따른 것. 올시즌 V리그는 분위기 과열로 인한 신경전에 몸살을 앓고 있다.

개막 한달만에 경고 카드 16개, 감독의 세트 퇴장이 2차례나 나왔다. 로베르토 산틸리 대한항공 감독은 옐로카드를 2차례 받았고,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은 부심에게 항의를 거듭 하던 중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당했다. 노우모리 케이타와 황택의(이상 KB손해보험), 최홍석(OK금융그룹)은 상대 코트를 바라보는 세리머니를 주고받으며 언쟁까지 펼쳐 논란이 됐다. 흥국생명 김연경은 아쉬운 마음에 네트를 잡아 끌어내리는 동작을 취했다가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의 항의에 직면한데 이어 KOVO에서 상벌위원회 개최 여부를 논의하기도 했다.

KOVO는 13개 구단 모두에 공문을 보내 'V리그의 모든 구성원들이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하여 리그에 임할 수 있도록' 당부했다. 각 구단은 상대팀을 비하할 수 있는 과도한 세리머니를 자제하자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한 상황.


하지만 선수들은 '과도한(과격한) 행동'의 범위 설정에 어려움을 겪는 분위기다. 팬들 사이에는 이 때문에 경기 보는 재미가 한결 반감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이슈로 인해 함성 대신 박수로 소극적인 응원을 펼치다보니 현장의 열기가 전만 못한 상황에서, 선수들의 세리머니까지 축소됐기 때문이다.


경기 도중 감정충돌이 벌어진 OK금융그룹-KB손해보험 전. 사진제공=KOVO
경기력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현대건설은 이날 기업은행에 패하면서 5연패에 빠졌다. 현대건설은 지난 10월 23일 한국도로공사 전 이후 승점 1점도 올리지 못했다. 특히 팀 분위기가 좀처럼 올라오지 않아 고민이다.

이도희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루소의 행동에 대해 "아무래도 요즘 세리머니 이슈가 있다보니 참았던 것 같다. 상대를 자극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안타까워서 하는 감정 표출도 자제하자는 공감대가 있다. 선수들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첫 세트에 분위기가 올라왔는데, 2세트에 확 꺼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파이팅을 한다던지, 세리머니를 세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네트를 흔들거나 볼을 때리지 않는 방법도 있다. 뒤로 돌아서 좋아하는 표현을 해도 된다. 상대팀의 기를 죽이고, 우리팀 분위기를 올리는 방법이다. 좀더 적극적으로 세리머니를 해주기 바란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6명이 호흡을 맞추는 배구의 특성상 팀 전체의 분위기가 올라오지 않으면 좋은 경기력이 나올 수 없기 마련이다.


수원=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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