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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무대는 낯설었지만, 빠르게 적응했다. 청소년대표팀에 자주 차출돼 소속팀 경기를 많이 뛰진 못했다. 그러나 소속팀에 돌아와서는 꾸준하게 주전멤버로 기용됐다. 당시에는 통역사가 있었다. 무엇보다 대화를 나눌 한국인 동료도 있었다. 김근환(28·알비렉스)이었다. 그러나 일본 생활 2년차 때 축구인생에 짙은 어둠이 깔렸다. 자신을 영입했던 감독이 바뀌어 벤치워머로 전락했다. 새 감독의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도 기용되지 못한 이유였다. 여기에 김근환도 이적하고, 통역사도 없어 외로운 나날을 보냈다. 정동호는 "선수가 감독 스타일에 맞춰가는 것이 당연한데 내가 적응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외로 눈을 돌린 젊은 선수들의 '눈물 젖은 빵'에 대한 얘기에 공감했다. 그는 "지금도 많은 젊은 선수들이 해외로 나간다. 성공하면 좋겠지만, 실패하는 선수가 많다. 축구만 생각하면 안되고 생활적인 면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애로사항이 많다. 생각지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했다. 또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축구했으면…'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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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돌파구는 임대였다. 정동호는 2011년 일본 J2-리그 가이나레 돗토리로 둥지를 옮겼다. 몸 상태와 실전 감각을 끌어올린 정동호는 이듬해 중국 항저우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컵대회를 포함 32경기를 뛰었다. 당시 니콜라 아넬카, 디디에 드로그바(이상 상하이 선화), 세이두 케이타(다롄 아얼빈), 무리퀴(광저우 헝다) 등을 수비하면서 경험을 쌓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난해 다시 요코하마로 돌아온 정동호는 출전 빈도수가 줄어들자 K-리그 유턴을 결정했다. 그리고 올시즌 울산 유니폼을 입고 K-리그 첫 발을 디딜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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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호는 신장(1m75)이 그리 크지 않지만, 빠른 스피드를 갖췄다. 특히 바르셀로나의 풀백 다니엘 알베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공격적인 스타일이다. 그는 "빠르게 공격에 가담해 크로스를 올려주는 것이 장점"이라며 "(김)신욱이형이 문전에 버티고 있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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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