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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출가해 1974년 해인사 승가대 대교과를 졸업한 정우스님은 1985년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주지로 소임을 맡게 되었다. 처음부터 자체건물을 목표로 불사를 시작한 정우스님은 헌신적인 기도와 원력으로 정착 2년 여 만에 800세대 불자를 교화하는 놀라운 성과를 일궈내었고, 이에 만족하지 않고 끝없는 기도 정진을 통해 만불보전을 성만한 것은 불기 2533년, 즉 1989년의 일이다. 가회동에서 출발, 가건물 법당에서 포교하던 구룡사가 지하2층, 지상7층의 연건평 2천 200평에 달하는 첨단시설을 갖춘 매머드급 법당을 건립함으로써 현대적인 시스템의 한국불교 도심포교의 새로운 모델이자 도심 포교당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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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사가 여느 도심 포교당과 다른 점은 웅장한 법당과 1만 여명에 이르는 신도수만이 아니다. '지혜로운 어린이, 베푸는 어린이, 건강한 어린이'라는 교육이념 아래 구룡유치원, 선재어린이집을 비롯한 8곳의 어린이 보육시설과 맞벌이 가족을 위한 24시간 유아보육시설을 운영, 단위사찰로는 최다 어린이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새싹없는 미래는 없다'는 정우스님의 신념의 결과로서 매년 수천 명의 어린이 불자들이 부처님 말씀 아래 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린 불자들을 통해 그 부모와 조부 등 가족들까지 부처님 말씀 아래로 끌어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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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신심은 강요가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가까이 접하는 가운데서 생긴다"고 강조하는 정우스님은 지하소극장과 극단 '신시'를 후원해 다양한 문화공연을 통한 문화포교를 이끌고 있다. 이는 기존 불자들만을 위한 포교를 넘어선 일반 대중을 위한 열린 문화포교로 지역주민들에게 높은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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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사의 또 다른 특징은 신도회가 없다는 점이다. 편의상 상조회와 불교대학, 거사림회, 학생회, 청년회 등을 신도회라 부르기도 하지만 신도회란 이름의 재가자 모임은 없다. 대신 매일 백여 명의 신도들이 자원봉사를 자청해 법당의 청소와 안내, 잡일 등을 도울 뿐 아니라 사찰행사에도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신도와 종무직원 등이 주축이 돼 투명하게 관리되는 재정과 신도들간 협의를 통해 사찰업무가 진행되므로 신도들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제3대 군종교구장에 취임한 정우스님은 ▷군승법사들의 윤활유·자양분 역할 ▷군승 위에 군림하는 수장이 아닌 '지원팀장' 역할 ▷불자 장병의 전역 후에도 신행을 돕는 통로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한바 있다. 그후 육사생도를 대상으로 법문을, 일요일에는 춘천·화천 법회를 하는 등 전후방 가리지 않고 강행군을 하며 군포교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정우스님은 지난 30사단 신병교육대 훈련병 및 수색대대 장병 1200명과 26사단 신병교육대 800명에게 자장면과 과일을 보시해 자장면 배식 봉사활동을 직접 펼치며 장병들을 격려했다. 지금까지 군부대를 방문해 3천여 명의 군인들에게 자장면 보시행을 이어온 스님은 '앞으로 군부대 자장면 보시운동을 지역별로 확대해 지역경제에도 기여한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또한 전방 30개 부대에 핫팩 22만개 등 겨울위문품을 지원하는 등 전방부대 물품기증을 통해 국군장병 사기진작에 크게 기여했다.
이처럼 평소 투철한 국가관을 가지고 국민이 함께하는 국가안보활동을 몸소 실천해온 스님은 국내를 넘어 홍법문화재단을 통해 필리핀 태풍피해 긴급재난 구호기금 3000만원을 전달했다.
스님은 "나는 아직 젊으니까 더 늙기 전에 한 곳의 군법당, 한 명의 장병이라도 더 찾고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같은 행군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군포교를 위해 모든 역량을 쏟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저소득층을 위한 나눔과 군포교에 적극 앞장선 정우스님은 2001년 만해포교상, 2005년 제60회 교정대상 국무총리상, 2010년 대통령 표창, 2014년 국방부장관 감사패 등을 수상하였고, 불교종합병원의 건립을 위해 1억원을 기탁해 삭막한 빌딩숲 속에서도 부처님의 자비가 살아 있음을 널리 알리고 있다. 글로벌경제팀 award@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