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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재학시절 느닷없이 발표됐던 박찬호의 LA다저스 입단. 모두가 반신반의(사실 십중팔구는 의심) 했는데 박찬호는 꿈을 향해 1구씩 집중했다. 선구자는 고독하다. 나침반도 없고, 앞서간 발자국도 없다. 박찬호는 맨손으로 성을 쌓아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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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의 다짐이 20년전 박찬호가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속에서 가졌음직할 각오, 편견을 깨고싶은 희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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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가 미국으로 떠나던 1994년 당시 국내 최고연봉은 1억3000원을 받았던 선동열 전 KIA감독이었다. 선 전 감독은 1993년 재일교포를 제외하고 국내선수로는 처음으로 1억원 연봉을 받아 화제가 됐다. 1999년까지도 정명원이 1억5400만원으로 최고연봉이었다. 박찬호의 수백만달러 연봉은 그때만해도 엄청난 돈 차이를 실감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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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금액이 500만달러면 연봉 역시 이 기준으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 현실적으로 2년 계약 기준으로 강정호의 연봉은 '300만달러 플러스 알파'라는 계산이 나온다. 1년에 400만달러(약 44억원)를 받는다고 해도 큰 이득이 아니다. 미국은 연봉이 주에 따라 다르지만 고액연봉자에 대해 최고 38% 세금을 부과하는 한국과 달리 원천징수되는 세금이 45~50%에 달한다. 추신수는 이것 저것 떼고 나면 연봉의 45% 내외를 손에 쥔다고 밝힌 바 있다. 타향살이의 고생에 감안하면 이정도 수치 차이는 큰 게 아니다.
선수들의 실력은 거의 정체된 듯 한데 몸값은 하루가 다르게 뛴다. FA든, 고액연봉이든, 국내에 대박 선수들이 많아지는 만큼 강정호의 고민도 깊어졌을 것이다. 여하튼 주사위는 던져졌고, 조만간 포스팅 팀이 나오고 연봉협상을 하게 되고, 내년이면 강정호가 처한 현실이 더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분명한 건 어떤 상황이 와도 스스로 당당해지고자 했던 그의 도전정신이 평가절하되는 일은 없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