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마이클 키튼이 주연을 맡은 영화 '버드맨'이 지난 23일(한국시각) 진행된 '제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에서도 다음 달 5일 개봉을 확정해 기대감이 높다. 하지만 '버드맨'은 한국에서 때아닌 대사 논란에 휘말리며 위기를 맞고 있다.
'버드맨'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다. 키튼은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영화 속에서 열연을 펼쳤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이 작품 하나로 아카데미 작품상 외에도 감독조합상 감독상, 골든글로브 각본상, 크리틱스초이스 각본상, 배우조합상 캐스팅상, 시카고영화제 파운더상 등 수많은 상을 거머쥐었다.
▶'김치'를 비하했다고?
하지만 극중 엠마 스톤이 연기한 샘의 대사 한마디로 한국에서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샘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꽃집에서 "X같은 김치 냄새가 진동해(It all smells like f**king kimchi)"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김치를 비하한 것이냐 아니면 극 속에 녹아 있는 자연스러운 대사냐하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우선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측은 샘의 신경질적이고 버릇없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대사라는 입장이다. 당연히 특정 나라나 문화를 비하할 의도는 없고 관객들이 영화를 직접 본다면 전혀 문제되지 않는 장면이라는 것이 영화사의 생각이다.
실제로 극 초반 샘은 상당히 신경질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마약을 해 재활원에 들어갔다가 나온 샘은 아버지 리건(마이클 키튼)의 비서 역을 하고 있지만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때문에 아버지에게 폭언도 서슴지 않는 캐릭터로 그려져 있다. 캐릭터 자체가 김치 비하를 할 정도로 안하무인이라는 설명이다.
한국 영화 관계자들 역시 극 중 샘이 꽃집 점원에게 "조용히 하라(Shut up)"고 소리를 지르고 이 대사를 한 것을 보면, 그리고 'f**king'이라는, 미국 속어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김치' 앞에 붙여 말한 것등은 비하 의도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장치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반면 몇몇 네티즌들은 영화 전체에 인종차별적인 시각이 묻어있다고 주장한다. 이 김치 신 외에도 "술 마시고 일어난 다음 날엔 얼굴이 몽골인처럼 되어있지 안그래?(You get that Mongoloid look when you're hung over, don't you?)"라는 대사도 등장한다. '몽골리안'도 아니고 '몽골로이드'라고까지 표현한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흑인을 '니그로'라고 지칭하는 것이 인종차별이듯 동양인을 '몽골로이드'라고 부르는 것 또한 같은 의미라는 것. 게다가 리건(마이클 키튼)이 일본인 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에서도 일본인 기자가 리건의 발음을 못알아 듣는 모습이 등장하며 동양인을 비하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멕시코 출신인 이냐리투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후 "아마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른 사람들 중 내가 영어를 가장 못할 것"이라며 "영어 잘하는 사람이 이민을 와야할테니 내년에는 이민법을 수정하지 않을까 싶다"다"고 농담했다. 이런 그가 일부러 인종차별을 위해 그런 장치들을 영화에 담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예민한 사안인 만큼 '좀 더 고민하고 장면을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조금 씁쓸함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