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악녀다.
KBS2 '후아유-학교 2015'는 역시 '스타 등용문'이었다. 김소현은 아역 배우에서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고 육성재(비투비) 남주혁이라는 신인도 발굴해냈다. 하지만 이들 주인공 3인방보다 더 빛났던 건 바로 강소영 역의 조수향이다.
강소영은 한마디로 '악녀'다.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은비(김소현)을 왕따시킨다. 세강고로 전학온 뒤에도 고은별(김소현)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은비의 정체를 폭로해 다시 왕따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못된 짓은 혼자 다 하고 돌아다니는 캐릭터인 셈. 그러나 교복을 벗은 그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소주 한 잔 제대로 기울일 줄 아는 인간미에 소탈한 말투, 애교 섞인 제스처까지 갖췄다. 그런 조수향이 어떻게 희대의 악녀로 거듭난걸까. "처음엔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은비랑 대립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악역이란 타이틀이 붙었고, 15회 엔딩까지 은비를 괴롭히더라고요. 그럴 줄 몰랐어요. 중반부에 은비를 괴롭히는 인물이란 걸 인지했죠. 그래도 설마설마 했는데 끝까지 괴롭히길래 감독님께 '전 언제 천벌받나요' 하고 물어봤어요."
아무리 연기라고는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 리얼했다. 웃는 얼굴로 까나리 액젓, 밀가루, 달걀로 구성된 굴욕 3종 세트를 선사할 줄 아는 내공을 갖췄다. 이간질은 옵션이요, 중상모략은 필수 아이템이다. 따가운 목소리 톤, 썩소, 기본 개념을 상실한 듯한 말투 까지. 너무 사실적이라 욕을 부를 수밖에 없었던 연기였다. "처음엔 이런 사람들의 관심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상처가 많이 됐어요. 처음엔 댓글을 계속 읽는데 정신적으로 너무 안좋더라고요. 보시는 분들이 '얼굴도 모르는 애가 나와서 저렇게 한다' 막 이렇게 하시니까 나는 끝났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초반에 그런 악플이 많았는데 중반 가면서 연기 잘한다고 해주시고 팬들도 생겼어요. 나중엔 응원해주시니까 그런 것들이 많이 힘이 됐어요."
보는 사람을 분개하게 할 정도의 연기였으니 연기를 하는 당사자 역시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힘에 부쳤던 게 사실이다. 더욱이 실제 성격과 캐릭터가 너무나 달랐다. 실제로는 방방 뛰는 귀염성 있는 성격인데 촬영하는 동안에는 내내 인상쓰고, 노려보고, 화내고, 밀치고, 맞고, 부들부들 떨고, 우는 연기만 해야했다. "너무 (은비를) 괴롭히기만 하니까 힘들었어요. 제가 긴장감을 살려줘야 하는데 약하게 해버리면 안되니까 감독님도 '더해라, 왜 안하냐' 하셔서 더 악하게 했죠. 그런데 제 캐릭터도 나름의 사연이 있고 외로움이 있는데 막상 항상 (은비를) 괴롭히고만 있으니까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 같은 게 있었어요. 중반부 때는 그런 면에서 좀 흔들렸는데 그래도 끝에는 정신 차리자 하고 마무리 지었어요."
단체신을 찍으면서는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도 생겼다. "한번에 최대 10~11시간 이렇게 서서 찍은 적이 있었어요. 모두가 다 절 미워하는 장면이었죠. 그 이후로는 교탁에 나가는 신이 있으면 그 기억이 나서 촬영 전부터 힘들더라고요. '힘들겠지, 힘들거야' 하고 갔는데 진짜 힘들고. 그러니까 어려워지더라고요. 그래도 '내가 마음 독하게 먹자', '강하게 먹자' 했는데 모두가 다 날 싫어한다는 건 힘들었어요. 감정선도 세고 외로운 장면들도 많았는데 울고 싶어도 울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마지막엔 아빠한테 혼나고 우는 장면이 있어서 펑펑 울었어요. 드디어 울 수 있으니까 시원하더라고요."
본인은 여러 어려움 속에 촬영을 마쳤지만 시청자들에게 조수향의 이름 석 자는 분명히 각인됐다. '연민정의 계보를 잇는 악녀', '역대 악녀 톱5'라는 등 그의 악녀 연기를 칭찬하는 수식어가 탄생했고 '후아유 악녀'라고 하면 조수향의 이름을 떠올리게 됐다. 전례없는, '사랑받는 악역'을 탄생시킨 셈. 시원하게 홈런을 날린 '후아유-학교 2015'를 뒤로 하고 조수향은 좀더 큰 배우로 성장하기 위한 발걸음을 뗄 생각이다. "제일 먼저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배우 활동을 하며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어요. 우울하고 힘들 때 조수향을 찾고 싶고, 전화 한번 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자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