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46분의 혈투가 막을 내리는 순간 '베테랑 깎신' 주세혁(36·삼성생명)의 입에선 아쉬움의 탄식이 흘렀다.
"그동안 걸어온 길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게 내 실력이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마침내 끝을 봤다. 2016년 리우올림픽은 2004년 아테네 대회 이후 세 번째 올림픽이었다. 4년 전 런던 대회 후 선배 오상은(39))과 후배 유승민(34)이 떠났다. 주세혁도 국가대표 은퇴를 고려했다. 그러나 쉽게 떠날 수 없었다.
주세혁이 기나 긴 '올림픽 여정'을 마감했다. 그는 "올림픽 단체전 메달을 따면 내 모든 임무는 끝난다"고 했다. 하지만 꿈은 이루지 못했다. '노메달'이었다. 단체전이 아쉬웠다. 그는 두 번째, 네 번째 단식에 나섰다. 하지만 눈물이었다. 두 번째 단식에선 드미트리 오브차로프(28)에 2대3(5-11, 9-11, 11-8, 11-2, 6-11), 네 번째 단식에서는 티모 볼(35)에 0대3(8-11, 9-11, 6-11)으로 패했다. 한국은 18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리우센트로 파빌리온3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남자 탁구 단체전 동메달결정전에서 독일에 1대3으로 무릎을 꿇었다. 동메달 문턱에서 좌절했다.
주세혁은 "후배들이 잘 해줬는 데 아쉬움이 많다. 결국엔 해내지 못했다. 2회전 단식에서 승기를 잡았었어야 했는데 과감하지 못했던 게 패인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2회전 단식에서 상대가 실수가 많은 선수인데 세트스코어 2-2로 맞선 상황에서 내가 너무 소극적이었다"며 "4회전 단식 전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상대 저항이 강력해지면서 덤덤해졌다. 티모 볼과는 국제대회서 자주 만났다. '마지막에 다시 붙어보는구나' 생각을 했는데, 내 실력이 부족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누가 뭐래도 주세혁은 뿌리깊은 나무였다. 2003년 파리세계선수권 남자단식 준우승 이후 13년간 줄곧 정상권을 지켰다. 수년째 자가면역질환인 '희귀병' 베체트병을 앓고 있지만 견디고, 또 견뎠다. 베체트병은 4년 전 런던 대회 직전 찾아온 발목 통증이다.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불쑥 찾아온다.
주세혁은 "마지막 올림픽이다보니 4위로 마친 결과가 계속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두 후배들이 첫 대회치고 너무 잘 싸워줬다. 후배들에 대한 신뢰가 커진 것 같다. 한국 탁구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4년 뒤에도 잘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주세혁이 떠나는 대신 이번 대회를 통해 새로운 간판이 등장했다. 정영식이다. 그는 단식 16강에서 세계 1위 마롱(중국)을 상대로 2세트를 먼저 따내는 명승부를 연출했다. 단체전에서도 첫 단식에서 접전 끝에 바스티안 스테거(35)를 3대2(12-10, 6-11, 11-6, 6-11, 13-11)로 꺾고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그러나 세 번째 경기에서 이상수와 복식으로 짝을 이뤄 대혼전을 펼쳤지만 2대3(11-9, 6-11, 7-11, 11-9, 9-11)으로 패하며 반전에 실패했다.
정영식은 올림픽 무대에서 폭풍 성장했다. 세계 톱 랭커를 상대로 주눅들지 않았다. 장기인 백드라이브는 견고했다. 연결력에 치중하는 약한 탁구로 폄하됐던 그의 탁구가 강해졌다. 거침없는 선제공격이 탁구대를 뒤흔들었다. 미래가 더 기대된다.
정영식은 "첫 올림픽이었다. 패기 넘치게 하고자 했는데 메달을 따지 못한 게 아쉽다. 사실 첫 대회라 너무 흥분해 스스로 바보같다는 생각도 했다"며 "기회만 잡는다면 중국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번에는 세혁이 형에게 많이 의지했지만 2020년 도쿄 대회 때는 나머지 두 선수가 내게 의지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3회 연속 메달 획득 목표를 이뤄내지 못한 만큼 꼭 이뤄내고 싶다"고 다짐했다.
'노메달'의 아픔은 컸다. 하지만 남자 탁구는 리우 대회를 통해 세대교체를 이루는 수확이 있었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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