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버매트릭스의 창시자로 불리는 빌 제임스는 클러치 능력을 부정했다.
숫자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유난히 빛나는 선수들이 있다. 농구의 마이클 조던은 승리를 결정짓는 슈팅을 수없이 성공시켰고, 야구의 데이비드 오티스는 팬들의 뇌리 속에 남은 수 많은 끝내기 홈런을 폭발시켰다. 일반적인 능력을 뛰어넘는 초인적인 집중력, 그게 바로 스타의 힘이다.
올 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UCL)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가 그렇다. 호날두는 3일(한국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2016~2017시즌 UCL 4강 1차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전반 10분 헤딩으로 선제골을 넣은 호날두는 후반 28분 강력한 슈팅으로 두번째 골을 넣었다. 후반 41분 루카스 바스케스의 낮은 크로스를 여유있게 마무리하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8강 2차전에 이어 2경기 연속 해트트릭이다. 이전까지 UCL 4강에서 해트트릭을 한 선수는 2012~2013시즌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당시 도르트문트에서 뛰던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가 유일했다. 호날두는 토너먼트에 들어 더욱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고 있다. 조별리그에서 단 2골에 그쳤던 호날두는 8강부터 엄청난 골폭풍을 이어가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8강 1차전에서 2골을 넣은 호날두는 이후 두번의 해트트릭을 더하며 무려 8골을 폭발시키고 있다.
호날두는 이번 해트트릭으로 UCL 통산 103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재밌는 것은 조별리그보다 토너먼트에서 더 많은 골을 넣었다는 점이다. 조별리그 72경기에 출전해 51골을, 토너먼트 66경기에 출전해 52골을 기록 중이다. 통상 약팀들도 함께 포함되는 조별리그와 달리 토너먼트에는 진정한 강자만이 자리한다. 탄탄한 수비조직력과 엄청난 견제 속에서 기록한 성과다.
한때 호날두는 '큰 경기에 약한 선수'라는 평가받았다. 역대급 골행진을 이어갔지만, 약팀을 상대로 한 기록이라고 평가절하 당했다. UCL, 엘 클라시코 등 팬들이 집중된 경기에서는 잠잠했던 호날두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벽을 깼다. 호날두는 2011~2012시즌부터 그토록 약했던 엘 클라시코에서 6경기 연속골을 뽑아냈다. 포르투갈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작아지던 호날두는 에우제비오의 기록을 넘고, 유로2016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이제는 큰 경기에서 가장 믿을만한 선수가 호날두다.
올 시즌 호날두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호날두는 올 시즌 각급 대회에서 36골을 넣는데 그치고 있다. 물론 대단한 기록이지만 과거에 비하면 분명 떨어진 수치다. 지네딘 지단 감독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포스트 호날두 시대를 준비하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이제 호날두는 더이상 측면에서 가운데로 움직이며 상대를 제압하는 속도와 파괴력은 없다. 골망을 찢을듯한 폭발적인 슈팅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집중력은 높아졌다. 시즌 말미로 갈수록 그의 득점포는 더욱 불을 뿜고 있다. 최근 22경기에서 19골을 넣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의 주역은 이스코였다. 밋밋한 전술로 비판 받던 지단 감독은 이스코 시프트를 적극 활용하며 초반 흐름을 주도했다. 이스코는 다이아몬드 미드필드의 핵으로 뛰며 맹활약을 펼쳤다. 이스코는 레알 마드리드가 허리싸움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압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단 감독은 후반 마르코 아센시오와 바스케스를 투입해 빠른 역습 축구로 분위기를 바꿨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를 완성한 것은 이스코도, 지단 감독도 아니었다. 개리 네빌은 호날두를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골잡이'라고 했다. 가장 필요한 순간, 팀이 가장 원하는 골을 넣어주는 공격수가 바로 가장 위대한 골잡이다. 호날두는 이런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클러치 능력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하지만 올 시즌 호날두를 보면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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