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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현장] "화려함 보다 진심" 이효리가 세상을 노래하는 방법(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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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영웅 기자] 이효리가 가수로 돌아왔다. 지난 14년간 정상급 엔터테이너로 활동한 이효리는 90년대 후반부터 전성기를 누린 대표 섹시 여가수다. 김완선 뒤엔 엄정화가 있었고, 후에 이효리가 그 계보를 이었다. 댄스곡에 섹슈얼티가 더해진 이른바 섹시 콘셉트가 폭발력을 가졌던 당시 가요계에서 '디바'의 위치는 그만큼 특별했다.

이효리가 가수로 무대에 서는 것은 2013년 5월 '미스코리아'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솔로 정규 5집 이후 4년 만이다. 이효리는 4일 오후 서울 건국대 새천년홀에서 정규 6집 '블랙'(Black) 발매를 기념한 간담회를 열고 "긴 기다림 끝에 복귀를 결심했고 멀리뛰기 하기 전에 뒤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또 "제주도에서 주부 생활 열심히 하고 요가하면서 편안하게 지냈다"면서 "이번 앨범 때문에 서울 올라와서 2주 정도 지내고 있다. 바쁘게 활동하다보니 재미있고 정신 없기도 하다"고 웃으며 근황을 전했다.

2013년 9월 뮤지션 이상순과 결혼 한 뒤 제주도 애월에 터를 잡고 줄곧 '소길댁'의 삶을 살아온 이효리는 지난 해부터 이효리는 자신의 최대 히트곡인 '텐 미닛'의 작곡가 김도현과 가수 컴백 준비에 돌입했다. 김도현은 신곡 작업을 의뢰받고 맞춤형 곡을 한창 작업해왔고 이번 음반의 공동 프로듀서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댄스곡부터 다양한 장르에 손을 댄 이효리는 정규 앨범 컴백을 정한 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 작업을 해 왔다.

이효리는 이번에 새 앨범 모든 곡들의 작사 및 작곡에 참여해 프로듀싱 능력을 뽐냈다. 걸그룹 멤버가 뮤지션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재차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타이틀곡은 앨범의 동명 곡 '블랙'으로 화려한 컬러의 메이크업과 카메라 렌즈 뒤로 가려졌던 자신의 본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장 베이직한 컬러인 블랙에 비유해 표현한 곡이다. 스케일 큰 사운드와 무대 퍼포먼스, 사막을 배경으로 촬영된 뮤직비디오가 완성도를 더했다.

그는 타이틀곡에 대해 "내 안에는 어두운 면과 슬픈 마음들이 있다. 항상 한쪽면만 사랑 받는 것이 서글프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 밝은 면만 부각시키기 보다는 나를 내던지고 싶은 마음으로 곡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 상황도 소개했다. 그는 "50도가 넘는 사막에서 촬영을 하며 고생 많이 했다"면서도 "재미있게 잘 찍었다. 사막에서의 이효리가 멋있을 것 같다는 촬영 감독님의 조언을 얻었다. 사막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거친 사막 같은 연예계에 오아시스가 될 수 있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게 아닐까"라고 웃었다.

이번 앨범은 단순히 댄스 여가수가 아닌, 뮤지션 이효리의 새로운 출사표를 의미한다. 가수와 예능 영역을 넘나드는 아티스트이자 스토리셀러로 영역을 넓혀온 만큼, 단순히 가요계의 대표 디바가 아닌 그 이상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다양한 장르로 꽉 채운 새 앨범은 넓고 단단한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간 세상 이야기에 두루 관심을 보여온 이효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는 더 넓어졌다. 지난달 28일 먼저 공개된 '서울'에서 광화문 촛불시위의 아픔을 노래했고, 다른 수록곡 '다이아몬드'에선 위안부 할머니의 슬픔을 위로했다. 그는 "서울이 예쁜 모습일 때는 몰랐는데 요동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살던 고향이 안쓰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시 속 사람들의 우울한 마음을 담아냈다"고 고백했다. 이외에도 30대 후반의 나이에 겪는 다양한 인생의 감정이 앨범에 담겼다.

이효리는 수록곡 '변하지 않는 건'을 설명하다 "다 늙고, 변하고, 죽고, 내 괴로움도 시간 다 지나면 없어지고, 인기나 영광도 영원하지 못한다"라며 "제가 티비에 몇 년 안 나오니까 동네 초등학생은 절 모르고, 저희집에 아이유가 놀러오면 엄청 좋아하는데 동네 친구 딸들은 저를 요가 선생님이나 시골 아줌마인 줄 알더라"고 웃었다. 이어 "시간이 지나면 다 그런 거구나,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걸 노래로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수록곡 '예쁘다'를 소개하면서 20대 시절도 돌아봤다. 그는 "자기 위치에서 자기만 아는 슬픔이 있다.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던 슬픔을 서른 아홉이 돼 다시 살펴보니 위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쓰면서 위로 받았다. 어릴 땐 제가 '예쁘다'는 말을 가장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외부에서 많이 들어도 스스로에게 '예쁘다'는 말 대신 타박을 많이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스스로에게 예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이효리는 자신과 가장 오랫동안 호흡해온 작곡가인 김도현과 다시 한 번 신드롬을 재현하겠단 각오다. 앨범에는 소탈한 소길댁과 화려한 가수 사이에서 고민한 이효리의 가치관이 음악으로 담겼다. 피처링에는 킬라그램, 로스, 앱신트, 이적 등이 참여했으며 현대무용가 김설진의 도움으로 유려한 춤선을 강조한 퍼포먼스도 새롭게 시도했다.

'가수' 이효리가 4년만에 꺼낸 키워드는 섹시한 무대도, 킬링파트도 아닌 진심 어린 자신의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이효리는 "화사하지 못할 거라면 깊이 있는 느낌으로 가자는 생각이었다. 앨범을 준비하면서 제가 곡과 가사를 쓰기 때문에 화려하지 않더라도 제 마음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의미를 뒀다.

가수로 컴백하는 이효리는 지난 17일 MBC '무한도전'과 25일 JTBC '효리네민박'으로 이미 예능 전초전을 치렀다. 새 음반 발매와 동시에 1주간의 음악방송 프로그램 활동에도 나선다. 5일 MBC뮤직 '쇼!챔피언'을 시작으로 KBS 2TV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무대에 올라 팬들을 만난다.

다시 가수로 돌아온 이효리의 콘셉트는 더욱 세분화되고 구체적이다.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콘셉트를 선점하는 것은 여전히 모든 가수들의 숙제다. 이 가운데, 이효리가 섹시디바 에서 삶을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러로 성장 중이다. 정상그룹 아이돌, 그 이후의 삶에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독특한 포지션의 연예인임은 분명하다.

섹시 여가수 계보의 꼭짓점에 서 있는 이효리가 이제 다시 빛날 차례다.

hero16@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