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외국인 투수들을 더 많은 경기에 안쓰고 싶겠나."
정규 시즌 막판 순위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점에서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은 외국인 투수들에 대해 묻자 다소 날카롭게 반응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올해 NC는 주전 선수들의 크고 작은 부상 릴레이로 어려움이 많았다. 주축 타자들이 번갈아가며 부상으로 빠진 것은 물론이고, 외국인 투수 에릭 해커와 제프 맨쉽의 공백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특히 NC는 불펜 비중이 높은 팀이다. 잠재력 있는 젊은 국내 선발 자원이 많지만, 좀 더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올해 장현식이 자리를 잡은 것처럼 조금 더 등판 기회를 주고, 경험을 쌓아야 하는 투수들이 대수다. 자연스럽게 외국인 투수들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중심을 잡아줘야 로테이션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담 증세, 장염 증세를 호소하며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는 해커의 등판이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을 때는 감독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NC는 살얼음판 승부가 펼쳐지는 가운데 외국인 '원투펀치'의 덕을 많이 보지 못했다.
NC가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빠르게 성장하는데 해커의 공이 분명히 있다. NC의 1군 진입 첫 시즌인 2013년부터 공룡 군단에서 함께 뛴 해커는 이제 KBO리그 베테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김경문 감독을 먼발치에서 보고 다가와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할 때 한국어 발음은 마산 토박이 못지 않다. 올해 새 동료가 된 재비어 스크럭스나 맨쉽에게 한국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선배로서' 들려준다.
사실 해커는 대단히 쇼맨쉽이 빼어나거나, 동료들과 친근하게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또 자신의 루틴을 지키고, 컨디션을 관리하는데 있어서는 종종 지나치다 싶을만큼 개인주의적인 성향도 있다. 프로페셔널 그 자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임감만큼은 분명하다. 팀 내에서 자신에게 어떤 기대를 걸고있는 지 잘 알고 있고, 그 역할을 해내려고 한다. 해커가 유독 이닝에 대한 욕심을 부리는 것도 불펜 투수들의 노고를 알기 때문이다. 특히 NC의 팀 특성상 외국인 선발 투수의 이닝 소화력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지고 내려오려고 한다.
준플레이오프에서 해커가 책임진 2경기는 찬란하게 빛났다. 1차전에서 7이닝 1실점 호투를 펼치며 승리를 이끌었던 해커는 15일 5차전에서 6⅓이닝 4안타 8탈삼진을 기록하고 승리 투수가 됐다. 시리즈에서 팀이 거둔 3승 중 2승을 책임졌다.
누구는 해커를 '독불장군'이라고 하고 '황소고집'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해커가 이번 가을 보여준 투구는 그의 '이유있는 고집'에 대한 당위성을 증명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그의 어깨가 무겁다.
부산=나유리기자 youll@sportschosun.com